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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속 한국인 유학생 커뮤니티의 장단점

by 열한시삼분 2026. 2. 12.

독일 유학 관련 이미지

 

독일에 처음 도착했을 때 한국인 커뮤니티는 선택이라기보다 거의 안전장치에 가까웠다.

언어도 서툴고, 행정은 복잡하고, 무엇 하나 혼자 확신 있게 처리할 수 없던 시기였으니까. 같은 말을 쓰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힘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그 공간의 다른 얼굴도 보게 됐다. 고마웠던 기억과 동시에 오래 남는 상처도 함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그 커뮤니티를 미화하지도, 완전히 부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 안에서 내가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더 또렷하게 기억한다.


초반에는 거의 필수였던 존재

유학 초반의 나는 독립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독일어는 교과서 안에서만 익숙했고, 실제 창구에서 빠르게 쏟아지는 말들은 거의 다른 언어처럼 들렸다. 그런 상태에서 거주 등록, 보험 가입, 휴대폰 개통, 은행 계좌 개설, 비자 준비까지 혼자 해낸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때 나를 도와준 건 먼저 독일에 와 있던 한국인 언니였다. 집도 함께 살았고, 행정 순서도 하나하나 배웠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에는 한국인 커뮤니티가 없었다면 훨씬 더 많이 흔들렸을 것이다.

 

집을 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급하게 방을 내놓는다는 글을 한국 커뮤니티에서 보고 직접 연락했고, 그 덕분에 공백 없이 이사를 할 수 있었다. 정보의 속도는 정말 빨랐다. 누가 어떤 교수에게 레슨을 받는지, 어느 도시 집세가 올랐는지, 어떤 보험이 학생에게 유리한지 같은 현실적인 정보는 커뮤니티 안에서 가장 빠르게 공유됐다. 이건 분명 큰 장점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유학 초반 몸이 좋지 않아 교회에서 쓰러졌던 날이다. 구급차를 불러주고, 병원과 대신 소통해주고, 내가 복용하던 약을 전달해 성분 분석까지 받아준 사람들도 한국 교포들이었다. 그날만큼은 ‘같은 언어’의 힘이 얼마나 큰지 뼈저리게 느꼈다. 낯선 나라에서 아프다는 건 단순한 신체적 문제가 아니라 공포에 가까운데, 그 공백을 메워준 사람들이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초반부터 편안했던 건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낯선 사람과 갑자기 함께 살아야 했고, 한국 교회라는 공간에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됐다. 안정감이라기보다는 긴장과 눈치가 더 컸던 시기였다. 그땐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이미 ‘적응’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걸 참고 있었던 것 같다.


좁은 사회 안에서 커지는 그림자

시간이 지나면서 커뮤니티의 또 다른 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독일이라는 공간 안에서 한국인 사회는 생각보다 작다. 도시를 옮겨도, 학교를 바꿔도 결국 어딘가에서 연결된다. 이 구조는 정보 공유에는 유리하지만, 소문이 돌기에도 아주 적합하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야기는 빠르게 퍼진다. 내가 하지 않은 말, 보지 않은 장면, 과장된 해석이 덧붙여진 이야기들이 돌아다니는 걸 들었을 때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는 말을 전해주는 사람도 결국 같은 커뮤니티 안의 사람이었다. 그 경험이 반복되면서 나는 점점 말을 아끼게 됐다. 내 행동, 내 선택, 내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가십거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자연스럽게 경계가 생겼다.

 

그때 나는 사람을 믿지 않게 됐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조금 다른 시선도 가능하다. 좁은 환경, 같은 전공, 경쟁 구조, 불안정한 유학생 신분. 이런 요소들이 겹치면 관계는 쉽게 예민해진다. 한국인이라서라기보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생기는 긴장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시기는 나에게 꽤 큰 상처로 남았다. 거리를 두기로 결심했을 때조차, 그 선택이 또 다른 오해를 낳기도 했다. 앞에서는 웃고, 속으로는 선을 긋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가장 혼란스러웠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환경이 나를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더 무서웠다.


거리를 두고 나서야 보였던 균형

어느 순간부터 나는 ‘필요한 만큼만 연결되기’를 선택했다. 완전히 끊은 건 아니었다. 관계는 유지하되, 감정은 일정 선 안에 두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한 발짝 물러서자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같은 건 아니었다. 조용히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커뮤니티는 하나의 얼굴이 아니라, 다양한 성향이 모인 집합이었다. 그 안에서 상처를 준 사람도 있었지만, 분명히 손을 내밀어 준 사람도 있었다.

 

결국 중요한 건 커뮤니티가 아니라 내가 어떤 태도로 그 안에 서 있느냐였다. 기대를 너무 많이 하면 실망도 커진다. 반대로, 필요한 만큼만 의지하면 충분히 건강하게 활용할 수도 있다. 커뮤니티는 목적이 아니라 도구에 가깝다. 정보가 필요할 때, 위기 상황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연결되면 된다. 그 이상을 요구하면 관계는 복잡해진다.

 

지금이라면 후배 유학생에게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초반에는 도움을 받는 걸 주저하지 말라고. 하지만 중심은 항상 자신에게 두라고. 어느 집단이든 너무 깊이 들어가면 개인의 기준이 흐려질 수 있다.


미화하지도, 비난하지도 않기

 

한국인 유학생 커뮤니티는 나에게 단순히 좋았다거나 나빴다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분명히 도움을 받았고, 동시에 상처도 받았다. 그 안에서 나는 사람의 따뜻함도 봤고, 인간관계의 복잡함도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국 나를 지키는 건 커뮤니티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의지하는 건 괜찮다. 하지만 휩쓸리지는 말 것. 미화하지도, 과하게 비난하지도 말 것. 독일에서의 삶은 결국 내가 책임지고 살아가는 시간이다. 커뮤니티는 그 여정을 잠시 도와줄 수는 있어도, 대신 걸어주지는 않는다. 그걸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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