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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람들과의 거리감,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 (관계의 속도와 방식이 달랐다는 걸 이해하기까지)

by 열한시삼분 2026. 2. 10.

독일 유학 관련 이미지

 

독일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말이 안 통해서였을 수도 있고, 방식이 달라서였을 수도 있다. 분명 처음부터 벽처럼 느껴졌던 거리감이 있었고, 그 안에서 혼자 서성였던 시간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된 건, 독일에서 사람 사이의 ‘간격’을 이해하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나의 경험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 거리감이 누군가의 무심함 때문이라기보다는 서로가 익숙하지 않았던 방식의 차이였다는 사실이다. 


첫 수업에서 느낀 거리감, 말보다 먼저 다가온 침묵

독일 사람들과의 거리감을 처음 제대로 느꼈던 순간은 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수업을 들었을 때였다. 독일에 온 지 1년 정도 지난 시점이었고, 어학원도 다녔지만 독일어는 여전히 초급 수준이었다. 악기 준비는 되어 있었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대학 수업’이라는 공간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 높은 벽처럼 느껴졌다. 교수님의 말은 빠르게 흘러갔고, 학생들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는 단어 몇 개만 겨우 들릴 뿐이었다.

수업이 끝난 뒤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 같았던 대화는 거의 없었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쳐도 가볍게 웃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한국에서라면 “어디서 왔어?”, “전공 뭐야?” 같은 말이 오갔을 텐데, 그런 흐름은 쉽게 생기지 않았다. 그때 처음 들었던 감정은 ‘차갑다’기보다는 ‘들어갈 틈이 없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말이 안 되니 표정이 굳고, 표정이 굳으니 더 다가가기 어려워졌다. 그렇게 말보다 먼저 침묵이 자리를 잡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 침묵은 거절이라기보다는, 서로 조심하고 있었던 시간에 가까웠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걸 알 수 없었다. 그냥 혼자만 멀리 떨어져 있는 기분이 들었고, 그 거리감은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았다.


친해지고 싶었지만, 선을 넘을 수 없었던 이유

그 거리감이 유독 힘들게 느껴졌던 이유는, 내 기준의 ‘친해짐’과 독일식 관계 맺기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와 친해지면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씩 나누고, 감정을 공유하는 관계를 떠올렸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그 속도가 너무 느렸고, 내가 기대했던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고 느꼈는데 반응이 크지 않거나, 몇 번 같이 시간을 보냈는데도 어느 선 이상 가까워지지 않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감정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사생활의 경계를 명확히 유지하는 모습은 처음엔 정이 없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도움이 필요해 독일어로 상황을 설명했는데도, 끝까지 듣기만 하고 “도와주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던 순간들은 꽤 서운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 관계들이 얕아서가 아니라, 내가 그 안에서 충분히 나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독일어의 한계는 단순히 말을 못 한다는 문제가 아니었다. 뉘앙스를 전달하지 못했고, 감정의 온도를 설명할 수 없었다. 말의 깊이가 얕으니 관계도 그 이상 깊어지기 어려웠다. 결국 그 벽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와 표현의 문제에 가까웠다.


시간이 지나서야 이해하게 된 관계의 온도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건 학교 밖에서였다. 솔직히 말하면, 음대 안에서 독일 친구들과의 관계는 초반에 거의 실패에 가까웠다. 필요한 만큼만 소통했고, 때로는 경쟁해야 하는 라이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독일 친구들과의 관계가 전환점이 됐다.

그곳에서는 음악 이야기가 아닌, 정말 사소한 일상 이야기를 했다. 일 얘기, 가족 얘기, 주말에 뭘 했는지 같은 이야기들. 그 과정에서 생활 독일어가 눈에 띄게 늘었고, 무엇보다 표현 방식이 달라졌다. 말을 더 간단하게, 하지만 솔직하게 하게 됐다. 그렇게 언어가 조금씩 편해지자,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학교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는 냉정하다고 느꼈던 동료들이 사실은 굉장히 자기 방식대로, 조심스럽게 관계를 쌓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됐다. 결국 독일 사람들과의 거리감은 ‘가깝지 않음’이 아니라 ‘서두르지 않음’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그 속도에 내가 맞춰 가야 했다.


다름을 이해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돌아보면, 독일 사람들과의 거리감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라기보다는 받아들여야 할 문화에 가까웠다. 끝까지 맞지 않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한국 친구들과처럼 자연스럽게 정을 쌓는 관계는 쉽지 않았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살아온 문화가 다르고, 나는 결국 그들에게 외국인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다름을 이해하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모두와 가까워질 필요는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순간, 관계는 오히려 편안해졌다. 나 역시 그들처럼 조금 더 조심스럽게, 조금 더 천천히 관계를 대하게 됐다. 독일에서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시간과 언어, 그리고 약간의 내려놓음이 함께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조금 변했고, 그 변화 덕분에 이곳에서의 삶도 덜 버거워졌다. 가까워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된 것, 어쩌면 그게 독일에서 배운 가장 현실적인 인간관계의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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