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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친구를 사귀는 현실적인 방법 (속도가 아닌 시간, 언어가 만든 거리, 그리고 남은 사람들)

by 열한시삼분 2026. 2. 11.

독일 유학 관련 이미지

독일에서 친구를 사귀는 건 생각보다 조용한 과정이었다. 한국처럼 빠르게 가까워지고, 자주 연락하고, 감정을 나누는 방식과는 결이 달랐다. 처음에는 무뚝뚝함이라고 느꼈고, 어느 순간엔 나만 애쓰는 것 같아 지치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이곳의 관계는 속도가 아니라 반복과 신뢰 위에 쌓인다는 걸. 그 과정을 통과하고 나서야 비로소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남았다.



같은 교실에 있다고 친구가 되진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유학을 떠났다. 그때는 인간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대학 입시가 가장 중요했고, 합격이 곧 목표였다. 친구 관계에 대한 기대조차 크지 않았다. 그저 학교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또래들과 어울리게 되겠지, 막연히 그런 생각 정도였다.

하지만 첫 수업부터 분위기는 예상과 달랐다. 교수의 질문에 학생들이 주저 없이 손을 들고 의견을 말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정답을 찾는 데 익숙했던 나에게, 생각을 말하는 수업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언어는 아직 부족했고, 대학 수준의 독일어는 더더욱 높게 느껴졌다. 악기 실력과는 별개로, 나는 대화 안에서 가장 느린 사람이었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같은 공간에 있다고 같은 출발선에 서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수업이 끝나고 나누는 가벼운 대화조차 따라가기 벅찼다. 웃음이 터지는 순간, 왜 웃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의 고립감은 생각보다 컸다. 친구가 되기 전에,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부터가 과제였다.



노력은 했지만, 관계의 온도는 다르게 흘렀다

그래도 가만히 있고 싶진 않았다. 같은 클래스 친구들에게 먼저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잘 안 되는 독일어로 농담을 던져보고, 수업이 끝나면 질문도 해봤다. 나름대로는 꽤 용기를 냈던 시기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늘 비슷하지 않았다. 짧은 대답, 이어지지 않는 대화, 무심한 표정. 어떤 날은 내가 친해졌다고 느꼈는데, 다음 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한국식 기준으로 보면 “왜 이렇게 벽이 있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서운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다가갔다고 생각했는데, 관계는 그 이상으로 깊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 관계를 경쟁이라는 틀 안에 넣어버렸다. 같은 전공, 같은 무대에 서는 사람들이니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 벽의 상당 부분은 언어였다. 말을 걸 수는 있었지만,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는 없었다. 대화를 이어갈 수는 있었지만, 농담의 뉘앙스를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냥 끄덕이게 됐다. 질문을 더 해야 했지만, 피곤하면 입을 닫게 됐다.

관계는 노력의 양만으로는 안 된다. 소통의 밀도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밀도는 언어에서 나온다. 그걸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친구는 ‘학교’보다 ‘생활’에서 생겼다

의미 있는 관계는 오히려 학교 밖에서 시작됐다.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난 독일 친구들과는 상황이 달랐다. 그곳에서는 말을 하지 않으면 일이 돌아가지 않았다. 실수하면 바로 설명해야 했고, 모르면 묻지 않으면 안 됐다. 바쁜 시간에는 눈빛과 짧은 문장으로도 소통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독일어가 빨리 늘었다. 무엇보다 생활 속 감정을 표현하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몸에 붙었다. 학교에서의 대화가 전공 중심이었다면, 아르바이트에서는 하루의 피로, 가족 이야기, 연애 이야기 같은 현실적인 대화가 오갔다.

그 차이가 컸다. 전공은 나를 평가하는 공간이었지만, 생활은 나를 사람으로 보는 공간이었다.

독일 사람들은 관계에 시간을 쓴다. 자주 만나고, 반복해서 보고, 같은 공간에서 꾸준히 시간을 보내야 조금씩 마음을 연다. 처음엔 무뚝뚝해 보여도, 어느 선을 넘으면 깊다. 대신 그 선까지 가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귀국이 결정됐을 때 그 사실을 실감했다.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고, 송별회를 열어주고, 추억이 담긴 선물을 건네받았다. 그 순간 비로소 알았다. 나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그 시간은 관계로 남아 있었다는 걸.



독일에서 친구를 사귀는 현실적인 방법

지금 돌아보면 독일에서 친구를 사귀는 건 성격 문제가 아니었다. 사교적인 사람도, 조용한 사람도, 처음에는 비슷하게 겪는다. 문제는 방식의 차이다.

첫째, 말을 많이 해야 한다.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틀려도 말하고, 이해 못 하면 다시 묻고, 끊임없이 입 밖으로 내야 한다.

둘째, 속도를 줄여야 한다. 한국처럼 빠르게 친해지는 걸 기대하면 계속 실망하게 된다. 이곳의 관계는 느리지만, 대신 오래 간다.

셋째, 공간을 넓혀야 한다. 학교 안에서만 관계를 찾으면 경쟁과 평가가 섞이기 쉽다. 생활 공간, 아르바이트, 취미 모임 같은 다른 영역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또 다른 결의 관계가 만들어진다.

결국 친구는 노력으로 ‘얻는’ 게 아니라, 시간을 함께 버틴 끝에 ‘남는’ 사람이다.



관계는 언어 위에 쌓인다

독일에서 친구를 사귀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관계를 여는 열쇠였다. 말을 많이 할수록 기회가 늘어났고,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관계의 깊이도 달라졌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외국인인 건 분명하고, 실수는 당연하다. 중요한 건 침묵하지 않는 것이다.

독일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말해주고 싶다.
친구는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대신 반복과 시간 속에서 천천히 자리 잡는다. 그 시간을 견디면, 마지막에 남는 사람은 생각보다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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