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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학 중 외로움을 관리하는 나만의 방법

by 열한시삼분 2026. 2. 14.

독일 유학 관련 이미지

 

독일에서의 시간은 늘 분주했다. 수업과 연습, 아르바이트와 집안일이 반복되면서 하루는 빠르게 흘러갔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자주 멈춰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고립된 느낌이 들었고, 아무 일 없는 얼굴로 웃고 있으면서도 속에서는 무언가가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 시간을 지나오며 깨달은 건 하나였다.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지만, 다루는 방법은 배울 수 있다는 것.


돈 앞에서 더 선명해졌던 외로움

독일에서 외로움이 가장 크게 몰려왔던 순간은 시험이 끝난 날도, 몸이 아픈 날도 아니었다. 오히려 생활비가 바닥을 보이던 어느 저녁이었다. 유학 초반에는 부모님의 지원을 받았지만, 약 4년쯤 지나면서 모든 생활비를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 시기와 동시에 집안 사정이 급격히 어려워졌고, 나 역시 더 이상 학생이라는 이유로 보호받을 수 없는 위치에 서 있었다.

 

Musikschule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식당에서 일했다. 하루 종일 움직이며 돈을 벌었지만, 일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갑자기 세상이 조용해졌다. 불을 켜지 않은 방 안에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그날 벌어들인 돈보다 다음 달 집세가 먼저 떠올랐다. 계산기를 몇 번이나 두드려보고, 종이에 숫자를 적어보며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했지만,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잠은 점점 줄어들었다. 하루에 세 시간 겨우 잘까 말까 했고, 대부분의 밤은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채로 새벽을 맞았다. “여기서 포기하면 어떻게 될까”, “조금만 더 버티면 나아질까” 같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에서는 계속해서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그때의 외로움은 단순히 혼자라는 감정이 아니라, 책임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감각에 더 가까웠다.


외로움을 줄이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식들

외로움을 없애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없다. 대신, 그 감정이 나를 완전히 집어삼키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하는 것이었다. 유학 초반에는 국제전화 카드를 사서 남은 잔액을 계산하며 통화를 해야 했고, 이메일이나 손편지로 소식을 주고받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스마트폰과 메신저가 생겼을 때, 언제든 연락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숨이 조금은 트였다.

 

사진을 보내고,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고, 의미 없는 대화를 이어가는 시간이 생각보다 큰 힘이 됐다. 그들은 내 상황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나를 “그대로의 나”로 기억해주는 사람들이었다. 독일에서의 나는 늘 설명이 필요한 사람이었지만, 한국에 있는 친구들 앞에서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난 한국 동생들도 큰 위로였다. 같은 음대생이 아니었기에 경쟁이나 비교 없이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날 수 있었다. 함께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고, 음악 이야기가 아닌 삶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조금씩 균형을 되찾았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일이 약함이 아니라는 것도, 그때 처음 제대로 배웠다.

반면,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시끄러운 공간은 오히려 나를 더 고립되게 만들었고, 특히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는 긴장감이 더해졌다. 그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외로움은 사람 수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깊이가 중요했고,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관계가 더 중요했다.


외로움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까지

외로움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다만, 그 감정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달라졌다. 그 변화는 단번에 오지 않았다. 독일어가 늘면서 학교 생활이 조금씩 안정되었고, 사람에게 모든 기대를 걸지 않게 되면서 마음이 덜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나도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 순간이 컸다.

 

그전까지는 환경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하고, 스스로를 몰아붙이기 바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 역시 서툴렀고, 어렸고, 실수도 많았다는 걸. 그 인정이 오히려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외로움은 나만 겪는 특별한 실패가 아니라, 낯선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감정이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외로움을 피하려 하기보다 관리하려 했다. 무너지기 직전이라는 신호가 오면 쉬었고, 말하고 싶을 때는 솔직하게 털어놓으려 했다. 완벽하게 해결되진 않았지만, 최소한 예전처럼 나를 압도하지는 않았다.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지만, 나는 달라졌다

지금의 나는 외로움을 없애야 할 감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해외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기본값에 가까운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감정이 나를 정의하게 둘 것인지, 아니면 내가 관리할 것인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그 시절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단 하나다. “정말 잘 버텼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도망치지 않았고,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외로움 속에서도 사람을 찾았고, 끝내 다시 웃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됐다.

지금도 가끔 외로움은 찾아온다. 하지만 예전처럼 두렵지는 않다. 그 감정이 지나갈 거라는 걸 알고 있고, 나는 이미 한 번 충분히 견뎌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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