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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혼자 버티는 시간이 많았던 이유 (주변에 사람이 있어도 결국 혼자였던 시간들)

by 열한시삼분 2026. 2. 13.
독일 유학 관련 이미지

 

독일에서의 시간들을 돌아보면,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건 무대 위의 순간이 아니라 방 안의 공기다. 사람들 사이에 있었지만 속은 늘 고요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결국 혼자 결정을 내려야 했던 날들이 있었다. 강해지고 싶어서 버틴 건 아니었다. 그저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하루를 넘기기 위해 버텼던 시간들이었다. 왜 그렇게 혼자라는 감각이 짙었는지, 지금의 내가 조금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 있어도 혼자였던 순간들

유학 초반 약 4년 정도는 부모님의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집안 사정이 급격히 어려워지면서 그 이후의 생활비는 전부 내 몫이 되었다. 음악을 전공한다는 건 겉으로는 멋져 보일지 몰라도, 현실은 굉장히 계산적인 삶이었다. 월세, 보험료, 식비, 교통비. 숫자는 매달 똑같이 돌아왔고, 나는 그 숫자를 맞추기 위해 움직여야 했다.

 

Musikschule (독일 음악교습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저녁에는 일식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낮에는 수업과 연습, 오후에는 레슨, 저녁에는 서빙. 하루가 세 조각으로 나뉘어 흘러갔다. 여행은 생각도 못 했고, 작은 소비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부모님께 다시 손을 벌리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웬만한 일은 스스로 해결하려 했다.

그러다 월급을 모두 합쳐도 집세가 모자랐던 달이 있었다. 계산기를 몇 번을 두드려도 결과는 같았다. 부모님께 말해도 한국 역시 힘든 상황이었고, 주변 친구들 또한 모두 유학생이었다.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구조 자체가 없다는 사실이 그날 유난히 크게 다가왔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와 방에 불도 켜지 않은 채 한참을 울었다. 밖에서 보는 나는 독일에서 전공하는 유학생이었지만, 그날의 나는 그저 월세를 걱정하는 스물몇 살의 아이였다.

결국 한국에 있는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그 순간, 고마움과 동시에 자존심이 함께 무너졌다. 그리고 아주 선명하게 느꼈다.

‘아, 나 여기서 혼자구나.’



왜 스스로를 고립시켰을까

사실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문제는 내가 점점 말을 줄였다는 데 있었다.

집안 사정이 나빠진 이야기를 의지하던 사람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나중에는 조롱의 소재가 되었고, 함부로 대해도 되는 이유가 되었다. 그 경험 이후로 나는 마음을 닫기 시작했다. 돈 이야기는 더 이상 꺼내지 않았고, 힘들다는 말도 삼켰다.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 같은 클래스 친구들이 밥을 먹으러 온 적이 있었다. 그들은 식사를 마치고 연습하러 간다고 말했다.

나는 그 자리에 남아 계속 일해야 했다. 그 차이는 단순한 스케줄의 차이가 아니라, 현실의 격차처럼 느껴졌다. 어떤 사람은 내 아르바이트 현실을 가볍게 말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철없는 말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날카롭게 박혔다.

 

그날 이후 나는 감정을 밖으로 잘 꺼내지 않았다. 울다가도 다음 날이면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학교에 갔다. 불면증이 찾아왔고, 하루에 세 시간도 채 못 자는 날이 이어졌다. 새벽까지 천장을 바라보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수없이 반복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도움을 받지 못해서 혼자였던 게 아니라 상처받을까 봐 먼저 거리를 둔 사람이었다. 유학생활에서 ‘혼자’라는 감정은 물리적인 고립이 아니라 심리적인 선택에 더 가까웠다.



끝을 봐야 했던 이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여기까지 온 시간을 그냥 버릴 수 없었다. 만약 이 순간에 멈추면, 이후의 모든 선택도 쉽게 포기하게 될 것 같았다. “어차피 안 된다”는 말이 내 인생의 기본값이 되는 게 무서웠다.

그래서 일을 계속했고, 인간관계에서도 더 이상 침묵만 하지는 않았다. 내가 알고도 참고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했고, 필요하다면 맞섰다. 그게 성숙한 방법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나를 지키는 선택이었다.

 

무엇보다 독일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었다. 한국에는 여전히 나를 믿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다.

내가 쓰러질 것 같을 때마다 그 사실이 나를 붙잡았다. 상황 때문에 악기에 100% 집중하지 못했던 건 지금도 아쉽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 시절의 나는 꽤 용감했다. 무모했을지언정 도망치지 않았다.



혼자 버틴 시간은 결국 나를 남겼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기보다 나를 현실적으로 만들었다. 외로움은 훈련이었고, 무력감은 기준이 되었다. 무엇이 진짜 소중한지, 누가 끝까지 남는 사람인지, 그리고 내가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알게 됐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도, 아마 나는 또 버틸 것이다. 방법은 조금 더 똑똑해졌겠지만, 결국 끝을 보려고 했을 것이다.

혹시 지금 혼자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혼자 버틴 시간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시간은 결국 남는다.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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