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에 오기 전까지 나는 문화 충격이라는 말을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다. 음식이 다르다거나, 언어가 불편하다거나, 생활 방식이 조금 낯선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독일에서 살기 시작하자, 충격은 늘 사소한 곳에서 찾아왔다. 일요일에 문 닫은 마트 앞에서, 도움을 기대했다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순간에, 규칙 앞에서 설명이 무력해졌을 때. 독일 유학 초반, 그렇게 조용히 마음을 흔들었던 장면들을 하나씩 떠올려본다.
문화 충격 1. 이유보다 규칙이 먼저 오는 나라
독일에 와서 가장 처음 느꼈던 건, 이 나라가 생각보다 훨씬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인다는 사실이었다. 일요일에는 마트가 문을 닫고, 분리수거는 항목별로 정확히 나뉘어 있고, 대형 쓰레기는 마음대로 버릴 수 없다. 집 열쇠 하나에도 유난히 엄격했고, 이메일보다 종이 편지가 더 빠르게 일을 처리해주는 경우도 많았다.
처음엔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조금만 융통성을 발휘하면 될 일을, 규칙이라는 이유로 단칼에 잘라버리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설명을 해도, 사정을 말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규정상 안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 규칙들이 불친절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이 사회가 개인의 책임을 전제로 움직이기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걸. 감정이나 사정보다,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기준이 우선인 구조라는 걸. 이해하지 못할 때는 계속 부딪힐 수밖에 없었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니 오히려 생활이 예측 가능해졌다.
문화 충격 2. 도와주지 않는 게 무례가 아닌 사회
한국에서 살 때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최소한 “어떻게 해볼까?”라는 반응은 돌아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독일에서는 달랐다. 독일어가 부족한 상태에서 상황을 최대한 설명해도,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경우를 여러 번 겪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정말 필요해서, 정말 용기를 내서 도움을 요청했던 순간이었다. 부탁을 잘 못 하는 성격인데도 상황을 설명하며 도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상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 들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악의는 없었다. 그저 “그럴 수 있지”라는 태도였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 사회에서는 ‘도와주지 않는 것’이 차별도, 냉정함도 아니라는 걸. 기본값은 ‘각자 해결’이고, 도움은 선택일 뿐이라는 걸.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계속 상처를 받았다. 받아들이고 나니, 불필요한 기대를 하지 않게 됐고, 그만큼 마음도 덜 다쳤다.
문화 충격 3. 설명할 언어가 없을 때의 무력감
유학 초반, 가장 크게 멘탈이 흔들렸던 순간은 어학원 마지막 시험이었다. 듣기, 말하기, 쓰기 시험이 있었고, 쓰기 시험 주제는 ‘독일에 와서 가장 먼저 했던 것’이었다. 나는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다음 날 프랑스로 여행을 떠났던 경험을 솔직하게 썼다.
문법은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채점하던 독일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이건 독일에서 한 일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한 일이다.” 주제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점수를 깎았다. 아무리 설명하려 해도,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독일어는 거기까지였다. 더 설득할 수 있는 문장도, 표현도 없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황했고, 황당했고, 분노가 치밀었다. 그리고 결국 남은 건 무력감이었다. ‘아, 나는 여기서 외국인이구나.’ 그 감각이 아주 선명하게 몸에 남았다. 나중에 그 사람이 인종차별로 유명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사실이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그 경험은 언어가 부족하다는 게 단순히 불편한 문제가 아니라, 설명할 기회 자체를 잃는 일이라는 걸 처음으로 알려줬다.
문화 충격 4. 집과 생활 환경이 주는 사소하지만 누적되는 불편함
독일 집에는 에어컨이 거의 없다. 대신 라디에이터 난방이 있고, 겨울에도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연다. 샤워커튼 문화, 오래된 건물 연식, 낡은 구조들까지. 한국에서 당연하게 누리던 편리함은 여기서 기본 옵션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이 모든 게 불편함으로만 느껴졌다. 왜 이렇게 불편한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이곳에서는 집이 ‘최대한 편안해야 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기능을 다하면 충분한 공간이라는 걸. 기준 자체가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문화 충격 5. 기다림이 일상이 되는 속도
독일에서는 모든 게 느리다. 행정도, 우편도, 처리 과정도. 처음엔 그 속도가 답답했고, 늘 불안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다림은 사람을 쉽게 지치게 만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기다림이 일상의 일부가 됐다. “이 정도면 빠른 편이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고, 처리 기간이 길어도 크게 놀라지 않게 됐다. 적응이라는 건, 이렇게 기준이 조금씩 바뀌는 일이라는 걸 독일에서 처음 배웠다.
충격은 사라지지 않았고, 대신 내가 달라졌다
지금 돌아보면, 독일의 문화 충격은 한국이 워낙 편하게 살 수 있는 나라였기 때문에 더 크게 느껴졌던 면도 있다. 적응하고 나니 독일 역시 분명 살기 좋은 나라였다. 다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들도 남아 있다. 편지 문화, 열쇠 문화, 에어컨 없는 여름과 라디에이터 난방은 끝내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래도 분명한 건 하나다. 그 시간을 지나온 나는, 예전보다 훨씬 단단해졌다는 것. 그때의 나에게 한마디를 해줄 수 있다면, 조금 더 많이 밖으로 나가서 사람과 문화를 겪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학교와 연습실, 아르바이트 사이만 오가느라 놓친 장면들이 여전히 아쉽다.
독일 유학은 미화할 수도, 쉽게 비난할 수도 없는 시간이었다. 문화 충격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위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그걸로 충분했다고, 지금은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