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에서의 유학생활은 ‘연습’과 ‘집’이 긴밀하게 엮여 있다. 수업이나 시험보다 훨씬 앞선 시점부터 유학생들이 부딪히는 문제는, 어쩌면 집을 구하고 나만의 루틴을 정착시키는 일일지도 모른다. 방음, 연습 가능 여부, 거리, 공과금 포함 여부, 계약 조건… 익숙하지 않은 시스템 안에서 작은 방 하나를 정하는 데에도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았다. 특히 바이올린처럼 ‘소리’를 다루는 전공자라면 그 기준은 훨씬 더 까다로워진다. 나 역시 독일에 있는 다섯 개 도시(Aachen, Düsseldorf, Köln, Münster, Essen)를 거치며 수많은 시행착오와 선택을 반복해왔고, 지금 돌아보면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결국 내 유학 전체를 이끌어온 흐름의 중심이었다. 오늘은 그 다섯 도시 중 세 곳, 그리고 그 안에서의 내 첫 독립과 반복된 이사, 그 속에서 집이 차지했던 실제 무게를 풀어보려 한다.
첫 유학부터 새 출발까지, 도시별 집 구하기 현실
내가 처음 독일에 도착했을 때 살았던 도시는 Aachen이었다. 입시 준비를 도와주던 음악원 원장님 덕분에 정착이 가능했던 도시였고, 따님이 살던 집에 얹혀 살면서 유학 생활의 첫 단계를 시작했다. 연습, 어학원, 비자, 보험, 계좌 개설 등 말 그대로 모든 걸 처음부터 혼자 감당해내야 하는 현실 앞에서, 집이란 단순히 ‘거주지’ 이상의 의미였다.
처음으로 독립해서 집을 구한 건 그 다음 도시인 Düsseldorf. 입시를 통과하고 첫 대학에 입학했을 무렵이었고, 한국 커뮤니티의 도움으로 얻게 된 집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집이 나에게 정말 잘 맞는 조건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그땐 뭘 따질 여유도, 비교할 기준도 없었다. 뭐가 편하고 불편한지도 구분이 안 되던 시절이니까.
그리고 나중에, 학교를 옮기며 다시 집을 구했던 도시는 Köln이었다. 내가 정말 살고 싶어서 간 도시였고, 새 출발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어느 정도 독일 생활이 익숙해졌고, 독일어도 늘었던 덕분에 그때는 내게 필요한 조건을 더 분명하게 따질 수 있었다. 연습이 가능해야 했고, 월세와 조건, 거리, 집 상태 등 모두를 고려했지만 결국엔 ‘감’이 이끌었다. 직접 발로 뛰며 본 여러 집 중에서, 운 좋게도 시내 중심부에 예쁜 큰 원룸을 구했고, 연습도 가능했다. 지금까지 살았던 집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집이다. 입시를 다시 준비하던 시기였지만, 집 덕분에 안정감이 있었고, 그 덕분에 꽤 오랜 시간 좋은 리듬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집 계약의 기준은 연습, 거리, 그리고 나의 루틴
나는 지금까지 독일에서 집을 구할 때 가장 중요하게 봤던 조건은 세 가지였다. 첫째, 연습이 가능한 집인지. 둘째, 학교나 기차역에서 가까운지. 셋째,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도 되는 집인지. 이 세 가지 기준은 내가 사는 공간이 단순한 ‘숙소’가 아니라 공부, 연습, 휴식, 수면이 모두 가능해야 하는 ‘거점’이기 때문에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조건들이었다.
집을 구할 땐 부동산 사이트를 가장 많이 활용했다. 독일 친구들을 통해 방을 이어받거나, 신문이나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얻기도 했다. 어떤 계약은 정말 치열했는데, 외국인인 내 입장에서는 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했다. 이름만 봐도 아시아계 외국인이니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내가 들어가고 싶었던 집 중 하나는 경쟁자가 굉장히 많았다. 그래서 필요한 모든 서류를 미리 준비해서 갔고, 부동산 입장에서 가장 수월한 입주자로 판단되어 바로 계약까지 성사된 적도 있었다. 이런 순간들이 집을 구할 때 얼마나 준비가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연습이 되지 않는 집에서 사는 친구들을 보면서, ‘연습 가능한 집’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도 자주 느꼈다. 나는 연습이 안 되는 집을 구한 적은 없지만, 학교 연습실에 의존해야만 했던 친구들의 고충은 너무 잘 알고 있다. 무거운 바이올린을 메고 한겨울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방을 기다리고, 정해진 시간에만 연습하고, 늦은 시간에는 아예 포기해야 했던 현실을 겪은 친구들을 보면, 집에서 연습할 수 있는 조건이 얼마나 큰 특권이었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집이 만든 루틴, 그리고 집이 만든 사람
내게 집은 단순히 머무는 공간이 아니었다. 연습, 식사, 수면, 회복… 모든 걸 집에서 해결했다. 나는 원래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고, 독일 유학을 하며 그 성향은 더 강화된 것 같다. 처음엔 불편하게 느껴졌던 난방, 냉장고, 세탁기, 조명 같은 사소한 것들까지도 점점 익숙해졌고, 내가 원하는 대로 꾸며둔 공간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유학생활을 지탱하는 가장 큰 기반이었다. 친구들을 초대해 파티를 하기도 했고, 며칠이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당연히 예상하지 못한 불편도 있었다. 이웃 문제는 늘 변수였는데, 한 번은 내가 집에 없었는데도 층간소음이 들린다며 새벽에 문을 두드린 독일 할머니가 있었고, 또 어떤 집에서는 옆집 아저씨가 하루종일 대마초를 피우는 바람에 머리가 아팠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그냥 독일에서의 한 장면으로 남는다.
유학이라는 건 단순히 음악만 배우는 시간이 아니었다. ‘사는 방식’을 배워가는 시간이었고, 집은 그 배움의 출발점이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스타일이 무엇인지, 어떤 공간에서 집중이 잘 되는지, 어떤 구조의 주방이 편한지, 냉방이 없는 여름을 어떻게 견디는지… 이런 사소한 것들이 결국 삶을 만드는 요소들이었다.
결국, 내가 살 집이 곧 나의 연습실이었다
돌이켜보면, 유학 생활의 절반은 정말 집을 구하고 유지하는 일이었다.
한 번 이사를 할 때마다 연습 루틴이 바뀌고, 생활 패턴이 흔들렸고, 때로는 멘탈까지 영향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어떤 공간에서 어떤 시간들을 보내고 싶은지, 그리고 어떤 기준을 우선으로 두어야 하는지를 나 스스로 명확히 아는 게 중요하다.
학교, 선생님, 입시 준비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가능하려면, 내가 온전히 쉴 수 있고 나만의 흐름을 지킬 수 있는 공간이 먼저 필요하다. 내가 겪은 수많은 이사 중에서, 후회로 남은 선택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그때마다 어떤 생각으로 집을 구했는지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어디서 사느냐’는 결국 ‘어떻게 살아가느냐’와 같다.
집을 구하는 일은 단순한 생활의 시작이 아니라, 유학생활 전체의 리듬을 결정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