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비는 숫자만 보면 단순한 계산 같지만, 실제로 살아보면 훨씬 더 복잡한 감정이 얽힌다. 같은 500유로라도 어떤 도시는 가볍게 느껴지고, 어떤 도시는 체감이 무겁다. 월세, 식비, 교통비 같은 고정 지출 항목은 결국 ‘어떤 하루를 살 수 있는가’를 결정짓는 기준이 된다. 그 하루가 쌓여 유학생활의 전체 밀도를 만들어낸다.
나는 독일 유학 동안 다섯 개 도시를 거쳐 살았고, 그때마다 생활비 체감은 달랐다. 이번엔 그중에서도 기억에 더 남는 세 도시를 골라서, 돈보다 더 많은 걸 배우게 했던 생활비의 흐름을 정리해 보았다. 단순히 어디가 더 저렴했는지가 아니라, 그 도시에서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가 중심으로.
도시 크기와 월세 차이, 장단점
쾰른은 내가 가장 사랑하던 도시였다.
처음부터 조건을 따져 선택했던 도시는 아니었다. 그냥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였고, 그 충동 하나로 움직였던 것 같다.
그래서 선택한 도시는 늘 중심부였고, 월세는 당연히 비쌌다. 좁고 비싼 집이었지만, 나는 그걸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특히 그 시기는 내가 학교를 옮기기 위해 다시 입시를 준비하던 시기였고, 연습이 가능한 집을 찾는 게 절대적인 우선순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시내 중심부에 있는 집일수록 소음이 기본값이라 오히려 악기 연습이 가능한 집을 찾기 쉬웠다.
그런 사실도 직접 부딪치며 알게 된 팁이었다. 이때의 삶은 팍팍했지만, 이상하게도 무너지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절대로 후회로 남지 않는 시간이었다.
뒤셀도르프는 아주 다른 결로 남아 있다.
한국 식당, 한국 마트, 한국 친구들. 모든 게 익숙하고 편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긴장감이 풀렸던 도시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전혀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곳에서 다니던 학교를 과감하게 그만두고 다른 학교로 옮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학도, 실기도 뛰어난 친구들이 많았지만, 아닌 경우도 유독 이 도시에 많이 모였다는 인상은 지울 수 없다.
‘안 해도 되는 분위기’ 속에서 ‘열심히 해야만 했던 사람’이 스스로를 관리하기란 쉽지 않다.
도시의 밀도는 결국 나의 리듬을 만든다. 편안함이 주는 위험을 그 도시에서 배웠다.
아헨은 유학의 시작점이었다.
어학원, 연습, 레슨. 하루 루틴은 단순했지만, 그 단순함을 지탱하는 건 온전히 내 몫이었다.
부동산을 알아보고, 학교를 찾아가고, 약속을 정하고, 수업을 듣고, 장을 보고, 연습실 앞에서 기다리고, 저녁엔 지쳐 돌아와 밥을 해 먹는 하루.
처음엔 주변에 도움을 줬던 유학생이 있었지만, 오래 가진 않았다. 결국 모든 것은 ‘혼자 알아서’였다. 독일어도, 행정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리고 내가 잘 못해서 생기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온몸으로 겪으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연습은 늘 부족했고, 말은 버벅였고, 외로움은 매일 밤에 찾아왔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 도시에서의 무력함이 유학생활의 진짜 첫발이었다.
장보는 물가, 교통비, 학생 혜택의 차이
생활비는 도시의 크기보다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물론 큰 도시일수록 아시아 마트나 한국 식재료 접근성은 좋았다. 쾰른, 뒤셀처럼 큰 도시는 필요한 물건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가격은 더 높았다. 그래서 늘 한국에서 돌아올 땐 가방 안에 쌈장, 된장, 고추장, 다시다 같은 기본 재료를 가득 싸들고 왔다.
한식을 고집했고, 외식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 달 식비를 200유로 이하로 줄이는 게 목표였다.
마트 세일 시간대를 외워두는 것도 자연스러운 루틴이 됐고, 오늘은 뭘 아껴야 할지 먼저 계산하고 장을 보러 나갔다.
교통은 도시마다 큰 차이가 없었다. 학생 등록만 하면 트램, 버스, 지하철은 물론이고 일부 기차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이건 독일 전체에 적용되는 시스템이었고, 내가 살았던 NRW 주에서도 동일했다.
학기당 300~400유로 정도의 등록비를 내면, 그 지역의 교통은 모두 무료였기 때문에 이동 비용에 대한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공연, 전시, 문화 생활의 할인 혜택도 아주 풍부했다. 때로는 무료 입장도 많았고, 마음만 있으면 매주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문화 비용은 ‘돈이 드는 항목’이 아니라 ‘숨만 쉬면 누릴 수 있는 혜택’에 가까웠다.
심리적 체감과 ‘사는 감각’의 온도차
도시의 크기가 체감 비용보다 더 크게 영향을 준 건 ‘심리적 거리감’이었다. 어떤 도시에서는 외로움이 더 심했고, 어떤 도시에서는 내 속도가 너무 빠르거나 느렸다. 쾰른에서는 감정이 많아졌고, 뒤셀에서는 느슨해졌으며, 아헨에서는 진짜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
사람이 많은 도시에서는 관계에 휘말리기도 쉬웠고, 작은 도시에서는 고립된 감정이 자주 올라왔다.
하지만 공부와 연습은 도시가 바꿔주는 게 아니었다. 내가 나를 어떻게 붙잡느냐가 더 중요했다. 집을 구하는 기준도 점점 명확해졌다. 연습이 가능한 집, 조용한 동네, 교통 좋은 위치. 결국은 생활비가 아니라 ‘생활의 흐름’을 먼저 정리하는 게 필요했다.
살기 좋다는 건 결국 돈을 덜 쓰는 도시가 아니라, 내가 무너지지 않고 살아지는 도시였다. 연습하고, 먹고, 자고, 이동하고, 숨 쉬는 그 감각이 나와 잘 맞아떨어지는 도시. 그런 도시에서는 돈이 좀 더 들어도 덜 버거웠고, 아무리 저렴해도 내 감정이 눌리는 곳에서는 오래 버티기 어려웠다.
‘사는 비용’이 아니라 ‘살리는 비용’이었다
유학생활은 계산기로 정리되지 않는다. 쾰른은 비쌌지만 내가 살아있었고, 아헨은 조용했지만 모든 게 낯설었다.
편한 곳에서는 흐트러졌고, 불편한 곳에서는 단단해졌다. 같은 교통비, 같은 식비, 같은 보험료를 내더라도 도시는 그 안의 ‘나’를 다르게 만든다. 그래서 어디가 더 싸냐, 더 좋으냐는 질문보다 먼저, 어디서 내가 나답게 살 수 있냐는 질문이 더 맞는 것 같다.
살 수 있는 도시보다, 살아지는 도시를 찾는 것. 그게 진짜 생활비를 감당하는 기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