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독일 음악대학에서 시험 시즌을 맞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인상은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복도도, 연습실도, 학생들도 모두 말수가 줄었고, 학교 전체가 한 톤 낮아진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조용함 안에는 분명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중요하지만, 동시에 평소처럼 하루하루를 연습해가는 과정의 일부처럼도 보였다. 나는 이 글에서 단순히 긴장되는 날이 아니라, 음악대학에서 ‘시험’이 어떤 의미로 작동하는지를 생각해보게 했던, 독일 음악대학에서 실제로 시험 시즌을 겪으며 체감한 학교의 분위기, 학생들의 태도, 그리고 시험 당일과 그 이후의 모습을 바탕으로 정리한 경험담을 적어 보았다.
시험이 다가오면 학교는 조용해진다, 그러나 느슨해지지는 않는다
시험 시즌이 시작되면 학교 곳곳의 공기가 달라진다. 복도에서의 웃음소리나 잡담은 눈에 띄게 줄고, 연습실의 불은 길게 켜져 있다. 학생들은 여전히 자유롭게 이동하지만, 각자의 걸음에는 분명한 목적이 생긴다. 누구도 소리 내어 긴장한다고 말하진 않지만, 전체 분위기에서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압박감이 있다.
흥미로운 건 이 긴장이 ‘보여지는 방식’이다. 한국의 시험 기간이 주변의 움직임과 경쟁으로 드러난다면, 독일 음악대학에서는 그 긴장이 대부분 안쪽으로 숨겨져 있다. 누가 시험을 앞두고 있는지, 시험이 언제인지, 어떤 곡을 준비하고 있는지는 굳이 묻지 않고 공유하지도 않는다. 대신 각자의 리듬을 지키는 데 집중한다.
이 시기의 학생들은 보통 연습량을 늘리기보다 기존 루틴을 유지하려 한다. 무리하게 연습하지 않고, 잠을 줄이거나 감정을 과하게 끌어올리는 방식보다는, 안정된 상태에서 시험에 임하는 태도가 많다. 겉으로는 고요하지만, 그 안의 밀도는 평소보다 훨씬 높아진다. 시험은 ‘특별한 날’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연습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과정이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연습실의 공기부터 달라진다 – 반복, 정리, 마지막 손질
시험 시즌의 연습실에선 특유의 공기가 감지된다. 악보를 넘기는 소리, 활을 세심하게 다듬는 손끝, 끝난 줄 알았던 프레이즈를 반복하는 연습자들. 이 시기의 연습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탐색이라기보다는, 이미 만들어둔 해석을 다듬고 정리하는 과정에 가깝다.
학생들은 대체로 곡의 흐름을 점검하고, 불안정한 부분을 반복하거나, 완성된 연주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둔다. 특히 시험 직전의 일주일은 연습량을 무작정 늘리기보다, 이미 구축해놓은 해석을 무너뜨리지 않으려는 의식이 더 강하다.
실제로 이 시기에는 새벽까지 연습하거나 무리하게 시간을 채우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독일 음악대학의 문화에서는 시험을 위해 평소의 리듬을 깨기보다는, 그동안 쌓은 루틴이 흔들리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것이 시험을 단기 이벤트로 다루기보다, 지금까지의 방향을 확인하는 시간으로 여기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또한, 시험을 준비하는 자세는 경쟁보다는 자율에 가깝다. 누가 얼마나 연습했는지, 어떤 곡을 준비했는지 신경 쓰기보다는, 각자의 음악적 흐름을 지키는 데 집중한다. 그로 인해 연습실은 한층 조용하지만, 그 안에 담긴 에너지는 오히려 더 단단하다.
시험 당일, 긴장보다는 담담함이 공간을 지배한다
시험 당일의 분위기 역시 생각보다 조용하다. 복도에서 긴장한 표정은 보이지만, 서로를 자극하거나 과도하게 반응하는 일은 거의 없다. 대기실에서 가볍게 악기를 만지거나, 짧은 음을 점검하는 정도. 누군가는 음악을 듣고, 누군가는 혼자 앉아 눈을 감고 있다.
특이한 점은, 시험을 마친 직후에도 반응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연주가 끝난 뒤, “잘 쳤어?”, “합격할 것 같아?” 같은 대화보다는, 그냥 악기를 정리하고, 가볍게 인사하거나, 조용히 연습실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시험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음악대학 생활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
평가 결과 역시 당장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은 시험을 ‘결정의 순간’이라기보다, 하나의 과정을 마무리하는 단계로 받아들인다. 교수들도 시험장에서 특별히 분위기를 다르게 만들지 않는다. 평소처럼, 하지만 조금 더 집중해서 듣고, 몇 가지 피드백을 간단히 남긴다.
이런 분위기 덕분에, 시험을 준비하면서 쌓였던 긴장도 시험 직후에는 빠르게 가라앉는다. 결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연주 그 자체에 대한 생각을 먼저 돌아보게 된다. 독일 음악대학에서의 시험은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자신이 어떤 연습을 해왔는지 스스로 확인받는 시간처럼 다가온다.
시험은 긴장의 ‘정점’이 아니라, 연습의 흐름 중 한 장면이다
처음 독일 음악대학에서 시험 시즌을 겪으며 느꼈던 건, 이곳의 시험이 긴장의 정점처럼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분명 중요한 시간이고, 학생들은 준비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하지만 그 긴장은 소란스럽게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더 조용하고 담담한 방식으로 흘러간다.
시험은 단기간에 결과를 내기 위한 압박이라기보다, 지금까지의 연습이 어떤 흐름이었는지를 점검하는 지점이다. 그 흐름이 잘 쌓여 있었다면 시험도 자연스럽게 지나간다. 반대로 연습의 흐름이 혼란스러웠다면, 시험에서도 그 불안이 그대로 드러난다.
독일 음악대학에서의 시험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연습을 마주하는 자리에 가깝다.
이 문화에 익숙해지면, 시험이라는 개념도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긴장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긴장은 과정 전체의 일부로 녹아든다. 시험 시즌은 어쩌면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밀도 높은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