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학 생활 중 가장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는, 실력이 아니라 ‘연습 방식’에서 일어났다. 한국에서의 연습은 노력과 반복, 그리고 완성도를 위한 숙련의 시간이었지만, 독일에서 마주한 교수님의 질문 한 마디는 그 모든 전제를 뒤흔들었다. "왜 그렇게 연주했니?"라는 질문 앞에서, 할 말이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연습이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감정을 음악 안에 표현해내는 일이라는 걸 체감했다. 그 전환점을 지나오며 겪었던 구체적인 경험과, 이후 달라진 연습 방향, 그리고 내면의 흐름까지 솔직하게 풀어보았다.
무조건 반복, 무조건 열심히… 그게 전부였던 연습
유학 초기에 내가 하던 연습은 지금 돌이켜보면 ‘체력전’에 가까웠다. 무조건 시간 채우기, 무조건 반복, 무조건 외우기. ‘무조건’이라는 단어가 내 연습의 기준이었다. 하루 종일 연습실에 붙어 있는 게 곧 성실함이었고, 지쳐 쓰러질 때까지 악기를 붙잡는 게 연습이라고 생각했다. 기술적인 문제는 반복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고, 감정이나 해석은 그 다음 문제라고 여겼다.
이런 연습 방식은 분명 효과도 있었다. 손이 익었고, 곡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게도 손은 움직이는데, 음악은 살아있지 않았다. 지시와 지표는 따랐지만, 왜곡된 모범답안을 연주하는 느낌. 무엇보다 연습이 ‘사고 없는 반복’이 되면서, 음악이 내게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었다.
독일 교수님의 한 마디가 바꾼 연습의 방향
내가 다녔던 독일 음악대학의 교수님은 수업 시간에 늘 질문을 던졌다. "왜 이렇게 셈여림을 넣었어?", "이 템포가 곡의 감정과 어울린다고 생각해?", "지금 이 연주는 너야, 아니면 누군가의 흉내야?"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한국에서는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대답은 늘 어려웠고,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고개만 숙인 적도 많았다.
그때 교수님이 말했다.
"한국 학생들은 다 똑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표현력도 많고 열정도 있지만,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아."
그 말이 내 가슴을 찔렀다. 나는 연습실에서 매일같이 손가락을 단련했고, 곡을 외우고, 감정 없이 정확한 연주를 연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음악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묻는 경험 자체가 처음이었다. 그때부터, 연습의 질문이 달라졌다.
‘이걸 어떻게 잘할까?’에서 →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싶지?’로.
그리고 그 질문은 연습보다 더 어렵고, 더 깊은 고민이었다.
해석과 질문 중심의 연습, 그리고 달라진 감각
연습 방향이 바뀐 후, 나는 처음으로 ‘곡을 연주하는 것’과 ‘곡 안에서 나를 표현하는 것’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반복보다 먼저, 왜 이 곡을 택했는지 생각했다. 작곡가가 살았던 시대, 그의 개인적인 역사, 그 곡이 쓰인 맥락까지도 따라가 보았다. 연주 전에 메모를 하고, 곡의 전개 흐름에 대해 스스로 해석해 보기도 했다.
기술은 중요했지만, 기술만으로는 곡의 온도를 전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연습은 점점 ‘연습량’보다 ‘연습의 밀도’로 바뀌었다. 텅 빈 시간을 길게 앉아 있는 대신, 짧아도 확신을 가지고 손을 올릴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이전에는 악보를 가득 채운 음표가 나를 압도했지만, 이제는 그 사이에 있는 쉼표와 여백에도 의미를 붙여주게 되었다.
그 변화는 내게 축복이기도 했고, 동시에 무거운 책임이기도 했다. ‘나는 이제 이 곡을 어떻게든 말해야 한다’는 부담이 더 깊어졌고, 오히려 무대가 더 무서워졌다. 예전에는 단지 ‘잘하고 싶다’였지만, 이제는 ‘진심을 말하고 싶다’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방향을 바꾸는 건 ‘결과’보다 더 큰 변화다
연습의 방향이 바뀐다는 건 단순히 더 나은 결과를 내는 기술을 얻는 게 아니다. 그것은 음악을 통해 나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고, 동시에 나를 표현하는 용기를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유학 초기에 이 점을 몰랐고, 한참 지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늦은 변화였지만, 그 변화 이후 나는 ‘음악을 잘하는 사람’보다 ‘음악을 진심으로 연주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지금도 매일 연습은 어렵고, 내 해석이 맞는지 확신이 없을 때가 많다. 하지만 이제는 ‘답’보다 ‘질문’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한, 연습은 계속해서 내 안에서 살아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