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학을 준비할 때는 자연스럽게 ‘경쟁’을 생각하게 된다. 실력을 더 끌어올려야 할 것 같고, 남들보다 더 잘해야 입시에 유리할 거라는 긴장도 따라온다. 하지만 막상 유학 생활을 시작하고 나면, 경쟁보다 훨씬 더 길게 마주하게 되는 건 ‘자기 자신’이다.
매일 연습하고 수업을 듣고 연주를 준비하는 이 반복 속에서, 외부보다 내부가 훨씬 더 크게 작용한다. 유학 중 경쟁을 거의 의식하지 않았던 바이올린 전공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왜 비교보다 자기 관리가 중요한지, 그리고 실제로 멘탈과 컨디션을 어떻게 다뤘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감각. 누구보다 잘하려는 마음보다, 스스로를 놓치지 않으려는 태도가 왜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했던 순간들을 적어 보았다.
남보다 나 – 경쟁이 아닌 자기 실망감에서 시작된 연습
독일 유학 중, 나는 ‘경쟁’이라는 단어를 의식하며 살진 않았다. 오디션을 준비할 때도, 콩쿠르 무대에 설 때도, 내게 가장 무서운 건 옆자리 친구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늘 부족하다고 느꼈고, 뭔가 계속 안 되는 느낌이 들었고, 그 부족함이 머리와 손끝까지 퍼져 있었다. 누가 더 잘하느냐보다, 오늘 내가 왜 또 이 부분을 못 넘겼는지, 왜 지난주보다 나아지지 않았는지가 더 크게 다가왔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항상 있었고, 그 사람들을 보며 위축되기보단 “저 사람은 저렇게 잘하는데, 나는 왜 아직도 이걸 못하지”라는 식의 자기 실망이 반복됐다. 그래서 오히려 더 경쟁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현실은 늘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고, 어떤 연주든 “내가 여기서 또 실패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마치 ‘나와의 경쟁’이라는 말이 뻔한 수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유학 생활 중엔 진짜로 그 말이 몸에 붙어 있었다.
외부 자극보다 내 안의 부족함이 더 크게 느껴질 때, 경쟁은 큰 요소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매일매일 무너지는 멘탈과 집중력을 붙잡는 게 더 급했고, 실력보다 감정을 관리하는 일이 연습보다 어려울 때가 많았다.
흔들림보다 유지 – 생활의 안정이 준 자기 관리의 여유
돌이켜보면, 경쟁보다 ‘자기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깨달았던 시기는 마스터 과정 때였다. 이제는 독일어도 어느 정도 유창했고, 학교 시스템도 익숙했고, 아르바이트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시기. 그제야 비로소 생활에 약간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악기 연습, 수업, 밥 먹는 시간, 쉬는 루틴까지 — 처음으로 하루를 내가 설계할 수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전까지는 그냥 “해야 하니까 했다”는 마음으로 매일을 버티듯 살았다. 하지만 익숙함이 쌓이자 자연스럽게 내 몸의 신호를 듣는 여유가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 컨디션을 확인하고, 밥을 챙겨 먹고, 잠을 잘 자는 것이 별거 아닌 듯 보여도 그런 일상이 결국 연습의 질을 끌어올려준다는 걸 느꼈다. 그게 바로 자기 관리였다. 그리고 이 자기 관리는 남과 비교해서가 아니라 오롯이 내가 얼마나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연습량보다 중요한 건 내 하루 리듬을 내가 스스로 붙잡을 수 있었던가 하는 점이었다.
비교보다 축적 – 나 자신을 지키는 힘을 만드는 과정
내가 유학생활에서 유지하려 했던 건 화려한 무대 경험이나 빠른 성장보다, 하루를 망치지 않고 잘 넘기는 법이었다.
연습이 안 되는 날, 예민한 날, 시험을 앞둔 날 — 그런 날도 그냥 살아내야 했다. 가끔은 악기를 쳐다보기도 싫었지만, 억지로라도 케이스를 열고, 손가락에 힘을 실었다. 연습 루틴이라고 말할 것도 없었다. 그냥 할 수 있을 때 하고, 안 될 땐 쉬고, 그래도 내일은 다시 해보는 식이었다.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무기력이 찾아오면, 그날은 산책을 하거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한국의 지인에게 짧은 연락이라도 하며 리듬을 바꾸려 노력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결국 사람으로 회복했다.
외롭고 힘들 땐 음대가 아닌 타 학교 친구들과 얘기하며 시야를 넓혔고, 교수님과의 대화 속에서 내 감정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얻기도 했다. 어떤 문제든 결국 ‘지금의 나’를 이해하고 돌보는 과정 없이는 풀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지금도 나는 특별히 강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경쟁은 결국 지나가고, 자기 관리는 쌓인다. 결국 유학의 성패를 가른 건, 실력보다도 그 꾸준한 ‘자기 축적’이었다.
잘하려는 욕심보다, 나를 놓지 않는 마음
독일 유학 시절, 나는 한 번도 누군가를 이기겠다고 생각하며 연습한 적이 없었다. 늘 내 부족함에 실망했고, 그 실망을 다시 딛고 연습했고, 때로는 넘어졌고, 가끔은 다시 일어섰다. 성장은 거창한 계기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날도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경쟁은 어느 순간 지나가지만, 자기 관리는 계속 남는다. 마음이 흔들려도 손끝에 집중할 수 있는 힘, 감정에 휘청여도 연습실에 들어갈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내 속도가 괜찮다고 느낄 수 있는 내면의 기준.
그게 결국 유학에서 가장 필요했던 힘이었다.
그리고 지금,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이거다. ‘남보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내가 나를 얼마나 지킬 수 있느냐’를 먼저 생각해보라고. 그게 유학을 버티게 하고, 결국 음악을 이어가게 해주는 힘이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