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유학 중 가장 크게 달라졌던 건, 연습량이나 실기 실력보다도 음악을 바라보는 마음이었다. 처음엔 그냥 주어진 곡을 외우고, 지시받은 해석을 따라가는 게 전부였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의 곡 안에서도 나의 감정, 생각, 그리고 삶의 단면이 투영되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무대 위에서 생긴 게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레슨 중의 질문이나 연습실 밖의 이야기들 속에서 천천히 찾아왔다. 지금은 음악이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대신 표현해주는 언어처럼 느껴진다.
음악을 대하는 감정이 바뀌던 순간들
독일 유학 중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 가장 인상적인 계기는, 오히려 무대나 수업이 아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집안 사정과 경제적인 어려움이 한꺼번에 몰려오던 시기였다. 잠도, 밥도 못 챙긴 채 정신적으로 바닥을 치고 있었고, 그 상태로 억지로 학교에 가 연습을 하고, 레슨에 들어갔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 첫 마디의 세 음을 그었을 때, 교수님이 연주를 멈추며 한마디를 건넸다.
“무슨 일 있어?”
숨이 막히는 순간이었다. 아무 말 없이 바이올린을 켰을 뿐인데, 내가 느끼는 감정이 소리로 그대로 새어나왔던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어떻게 알았지? 싶은 당혹감과 함께, 내가 이렇게까지 무너져 있구나 하는 복합적인 감정이 몰려왔다.
이후 같은 곡으로 졸업연주를 준비하게 되었고, 이번엔 단순한 실기 이상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혼자 연주하는 걸 두려워하던 내가, 반주를 피아노가 아닌 현악기로 바꾸고, 프로그램을 직접 구상해 공연을 준비했다. 무대가 무섭기만 했던 과거와는 달리, 그때는 ‘즐긴다’는 감정을 느꼈다. 무대 위에서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이 그 안에 같이 있다는 게 이상하게 설레고 벅찼다.
오케스트라 속에서도 음악은 특별했다. 특히 베토벤 심포니를 연주할 때, 앞자리에 앉든 뒤에 앉든, 심지어 대타로 들어가 연주를 해도 늘 감정이 밀려왔다. 서로 다른 해석을 가진 지휘자들, 각자 색깔이 뚜렷한 동료들과 함께 맞추며 느꼈던 그 과정이 ‘음악’이라는 단어의 깊이를 바꿔놓았다. 소리가 아니라 사람을 만지는 경험처럼 느껴졌다고 하면 과장일까?
이전에는 몰랐던, 진짜 ‘음악’에 대한 감정
한국에서 음악은 사실상 의무에 가까웠다. 왜 바이올린을 시작했는지 물으면 “모른다”는 대답이 자연스러울 만큼, 음악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전공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그저 열심히 하고, 또 열심히 해야 한다고 배워왔다. 기준도, 방향도, 관점도 없이, 그냥 ‘하라고 해서’ 하는 삶이었다.
유학 초기에 했던 연습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작정 반복, 무조건 시간 채우기, 외우기, 많이 하기. 그게 전부였다. 음악을 생각할 여유도, 해석할 틈도 없었다. 그런데 독일의 교수님들은 수업 중에 항상 질문을 던졌다. “왜 그렇게 생각해?”, “이 부분은 너라면 어떻게 하고 싶어?”, “그 감정은 너한테 어떤 이미지로 와?”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뭘 대답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교수가 말하면 그대로 따라하는 게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왜 한국 학생들은 그렇게 많은 표현력을 가지고도, 자기 이야기를 안 하지?”라는 말을 들었다. 충격이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내가 갇혀 있던 틀을 깨고 싶어졌다. 작곡가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고, 악보를 ‘읽기’보다 ‘느끼는’ 방식으로 바꾸게 됐다. 내 감정에 솔직해지고, 마디마다 이야기를 상상하면서, 연습의 목적이 바뀌었다. 물론 그만큼 음악이 어려워졌고, 무대도 더 무서워졌다. 하지만 그게 더 진지해졌다는 증거였고, 연주를 통해 사람에게 뭔가를 전달하고 있다는 감각은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음악이 부담이 아닌, 말이 되는 순간
예전엔 연습은 연습이고, 삶은 삶이었다. 하지만 점점 음악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내 안에 녹아 있는 무언가’처럼 변했다. 독일에서의 연주 경험, 교수님과의 수업, 오케스트라 속 순간들, 그리고 집에서 들었던 엄마의 말까지.
“도레미파솔라시도, 그 7개 음으로 이 세상의 음악이 다 만들어졌다는 게 너무 신기하지 않니?”
그 말이 처음엔 그냥 지나갔는데, 어느 순간 다시 떠올랐다. 진짜 그렇구나. 이 작은 음들이 모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어떤 날은 눈물까지 나게 하니까.
그 이후로는 연주할 때 더 깊게 몰입하게 됐고, 음악을 들을 때는 더 편안해졌다. 예전엔 단순히 따라 해야 할 악보였던 것이, 지금은 ‘내가 말할 수 있는 언어’가 되었다.
음악이 나를 설명해주는 도구 같고, 말보다 더 진실하게 나를 표현해주는 방식처럼 느껴진다. 이 변화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고, 연습할 때마다 더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음악이 나를 변화시켰다, 아주 천천히
독일 유학을 하며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건, 단순히 연습 방식이 바뀌었다는 뜻이 아니다.
음악이 나에게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과제’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걸 대신 말해주는 언어’가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떤 날은 교수님의 한마디가, 어떤 날은 무대에서 느낀 설렘이, 또 어떤 날은 엄마의 말 한 줄이 내 마음을 바꾸어갔다.
지금도 나는 음악 안에서 고민하고, 감정에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조금씩 더 깊어지고, 더 나다워지고 있다는 걸 안다.
음악은 여전히 어렵고 끝이 없지만, 적어도 이제는 이유 없이 괴로운 숙제가 아니다.
이건 내 언어고, 내가 살아온 방식이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