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에서의 시간은 단순히 연주 실력이 늘었다고 말하기엔 부족하다. 음정이 더 정확해졌다는 이야기로는 설명이 안 된다. 오히려 바뀐 건 음악을 대하는 태도였고, 소리를 바라보는 시선이었고, 무대에 서는 마음가짐이었다. 그 변화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았다. 한 번의 레슨, 한 번의 공연, 한 번의 질문이 이어지면서 조금씩 쌓였다. 돌아보면 독일은 나를 음악가로 만들었다기보다, 음악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바꿔놓았던 시간이었다.
레슨이 바꿔놓은 연습의 방향과 음악을 대하는 태도
독일에서 가장 큰 행운은, 내가 배우고 싶었던 것을 모두 가지고 계신 교수님을 만났다는 점이었다. 테크닉, 설명 방식, 곡에 접근하는 태도, 질문하는 방식까지. 단순히 “이렇게 연주해라”가 아니라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말해보라”는 수업이었다.
하루 종일 붙잡고 씨름해도 해결되지 않던 구간이 있었다. 활이 마음대로 안 움직이고, 소리는 답답하고, 아무리 반복해도 벽처럼 느껴지던 부분. 그런데 레슨에서 단 5분 만에 방향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 물론 그 5분은 그 전의 수많은 반복과 연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순간이다. 그래서 더 짜릿했다. 노력의 시간 위에 올라간 깨달음은 단순한 기술 습득과는 다른 종류의 감정이었다.
그때부터 연습 방식이 달라졌다. 무작정 반복하는 대신,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 작곡가는 왜 이렇게 썼을까?” “이 화성 위에서 내가 만들어야 하는 소리는 무엇일까?” “내가 이 인물이라면 어떻게 말할까?” 곡을 외우는 게 아니라, 이해하려고 애썼다.
어릴 적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이 일곱 음으로 이렇게 많은 곡이 만들어진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고. 그때는 그냥 스쳐 지나갔던 말이, 어느 순간 현실이 됐다. 사람이 이런 음악을 썼다고? 이런 감정을 음표로 남겼다고? 그 경이로움이 생기니, 음악은 과제가 아니라 하나의 언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기술이 늘었다기보다, 음악 앞에서의 자세가 달라졌다.
환경이 열어준 시야, “음악에는 답이 없다”는 감각
독일이라는 환경 자체도 음악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주었다. 학교에는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있었다. 같은 곡을 연주해도 해석은 전혀 달랐다. 표현 방식도, 호흡도, 프레이징도 모두 달랐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다. 누가 맞는 거지? 정답은 뭘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음악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을 그때 처음 실감했다는 걸.
공연 접근성도 큰 영향을 줬다. 세계적인 연주자들의 공연을 만 원도 안 되는 금액으로 볼 수 있었고, 운이 좋으면 연주자와 같은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클래식 음악이 특별한 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는 환경이었다. 길거리 음악가들, 교회 음악, 오픈 공연들. 음악은 항상 열려 있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난 감각은 분명 다르다. 단순히 “잘 치고 싶다”가 아니라,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음악을 직업으로 준비하던 학생이, 음악을 하나의 언어로 다루는 사람으로 조금씩 바뀌어 갔다.
힘든 시간도 음악을 바꿨다 – 예민함과 책임감 사이
모든 시간이 긍정적이었던 건 아니다. 돈 문제, 외로움, 인간관계, 행정 스트레스. 그 시기에는 연습량이 줄었고,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다. 잠을 제대로 못 자니 집중력은 무너졌고, 예민함은 높아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임감은 더 강해졌다. 무대를 망치고 싶지 않았고, 나 때문에 앙상블이 흔들리는 건 싫었다. 그래서 더 예민해졌고, 무대 공포도 심해졌다. 음악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두려움이 앞서는 시기도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예민함도 내 일부가 됐다. 감정이 복잡해질수록 음악은 더 솔직해졌다. 좋은 감정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결이 생겼다. 힘들었던 시간은 연주를 편안하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깊게 만들었다.
그래서 독일 생활이 내 음악에 준 영향은 단순한 실력 향상이 아니다. 사람으로 흔들려봤기 때문에, 연주도 단단해졌다고 생각한다.
음악보다, 인간으로 성장한 시간
지금 돌아보면 독일 유학은 음악 인생에서 ‘필수 코스’였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꼭 독일이 아니어도 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연주 기술보다 태도가 달라졌고, 곡을 외우는 사람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사람이 되었고, 무대가 두려움의 장소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경외의 공간이 되었다. 무엇보다 음악을 통해 나 자신을 더 많이 마주하게 됐다.
독일은 나를 완벽한 연주자로 만들진 않았다. 대신 음악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그리고 그 변화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