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학을 결정할 때는 기대와 각오가 앞섰지만, 막상 독일 음악대학의 수업과 연습 속에 들어오니 완전히 다른 차원의 긴장감이 기다리고 있었다. 실기 중심 수업이라고는 해도, 연습량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질문들이 이어졌고, 누구에게 기대거나 털어놓을 수 있는 구조도 아니었다. 독일 유학 중 가장 깊었던 전공 스트레스는 단지 연주가 잘 안 풀려서가 아니었다.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 비교 없는 경쟁 속에서 느껴지는 고립감,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맞물려 몰려온 감정이었다.
스스로 증명해야 했던 시간 – ‘왜 이렇게 연주했는가’에 끝없이 답해야 할 때
독일 음악대학의 실기 수업에서는 ‘잘 쳤다’보다 ‘왜 그렇게 연주했는가’를 더 많이 묻는다. 그 질문에 준비 없이 서 있으면, 연습을 아무리 오래 했어도 금세 무너진다. 연주를 하긴 했는데, 어떤 논리로 해석했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멈칫했던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이곳의 교수들은 정답을 주지 않는다. 방향을 가리켜주지 않고, 질문만 던진 채 기다린다. 그 기다림은 생각보다 압박감이 크다. 누군가 틀린 걸 고쳐주지 않고, 대신 무엇이 틀렸는지를 묻기만 할 때, 오히려 그 긴장감은 더 깊어진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까지 설명을 요구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게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기준의 부재’를 시험하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 시기가 가장 힘들었던 이유는,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다는 게 연습 중에도 계속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처럼 누군가 정리해준 기준 안에서 연습했던 방식으로는 버티기 어렵다. 결국 모든 기준을 스스로 세워야 하고, 그걸 연주와 말로 설명할 수 있어야만 수업에서 대화가 이어진다. 그 구조 안에서 버티려면, 생각보다 단단한 자기 기준이 필요했다.
비교 없는 경쟁 – 조용하지만 명확한 압박감
독일 음악대학에서는 학생 간의 비교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누가 더 잘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 순위도 없고, 점수도 공개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게 너무 편하게 느껴졌다. 서로 자극받지 않고 자기 속도로 갈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비교가 없다는 건 곧 ‘보이지 않는 경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는 걸. 누가 나보다 잘하는지, 누가 얼마나 앞서 있는지 알 수 없으니, 결국 자신을 향한 비교가 더 깊어지게 된다. 주변이 조용하다는 이유로 불안이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나만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연습실에 있을 때마다 스멀스멀 올라왔다.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건, 결과가 보이지 않는 구조였다. 정해진 기준도 없고, 피드백은 대부분 간접적이기 때문에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에 대한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 객관적인 결과가 없다는 점은 때때로 음악 자체에 대한 의심으로 번지기도 했다. 실기 수업에서 받은 피드백은 늘 간접적이었고, 칭찬은 드물었으며, 비교적 침묵 속에서 시험이 치러졌다. 그 안에서, 보이지 않는 경쟁은 매일 조용히 누적되어 갔다.
끝없는 불확실함과의 싸움 – 이 길이 맞는지 의심하게 되는 날들
가장 깊은 스트레스는 실은 하루의 연습이나 수업 자체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에서 왔다. 지금 이만큼 하고 있는 연습이 결국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이 해석 방식이 정말 정답에 가까운지, 교수의 반응이 긍정적인 건지 부정적인 건지조차도 명확하지 않았다.
독일 음악대학은 실기 중심이지만, 그 실기는 ‘결과를 보는 구조’가 아니라 ‘과정을 계속 이어가는 구조’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지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늘 다음이 있고, 또 새로운 해석과 기준을 요구받는다. 이 구조 속에서는 작은 성공도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금방 다시 무언가를 증명해야 하는 위치로 돌아온다.
특히 유학생으로서 이 구조는 더 크게 다가온다. 언어 장벽, 문화적 거리감, 교수와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간극까지 포함해, 피로가 누적되는 날이 많았다. 음악을 좋아해서 선택한 길인데, 그 음악이 오히려 가장 큰 부담으로 느껴지던 순간이 분명히 있었다. 그때는 ‘내가 유학을 버틸 수 있을까?’보다 ‘내가 계속 음악을 할 수 있을까?’를 더 많이 고민하게 됐다.
스트레스는 결국 ‘기준 없는 상태’에서 온다
돌이켜보면, 유학 중 가장 힘들었던 전공 스트레스는 내가 연습을 못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기준을 만들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가 대신 점검해주지도 않고, 평가해주지도 않는 환경 속에서, 나 스스로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를 판단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독일 음악대학의 수업 구조는 결국 ‘스스로 사고하고, 설명하고, 유지하는 능력’을 끝없이 요구한다. 그 구조는 때로 압박감으로 다가오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성장의 근육도 생긴다. 그 스트레스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그 시간을 지나며 더 단단해진 내 태도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스트레스가 있다는 건 내가 여전히 음악을 붙들고 있다는 증거였다. 결국 문제는 스트레스가 아니라, 그 안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회복하느냐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