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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멘탈 관리하는 법 (슬럼프, 회복, 그리고 어른이 되어간다는 감각)

by 열한시삼분 2026. 1. 30.

독일 유학 관련 이미지

 

연습이 전부였던 시절에는 연습이 안 될 때 무너지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독일 유학 중 맞이한 실기 슬럼프는 단순히 테크닉 문제가 아니라, 정서와 일상의 전체 균형을 무너뜨리는 감정이었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환경에서, 나 혼자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유학 중 실제로 경험했던 슬럼프의 순간들과, 교수님의 한마디로 시작된 회복의 변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진 멘탈 관리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실기 시험 전, 예민함이 최고조로 올라오는 시기

독일 유학 생활 중 가장 강한 스트레스를 느꼈던 시기는, 단연 실기 시험을 앞둔 시기였다. 연습을 아무리 해도 마음이 따라주지 않았고, 매일 아침 일찍 나가 연습실에 앉아 있어도 손끝이 둔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두 주가 지나면, 답답함이 쌓이고,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왜 이렇게밖에 안 되지’, ‘이 상태로 무대를 올라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으면서,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유학 초반엔 그럴수록 더 연습해야 한다고 믿었다. 힘들어도 더 버티고, 더 반복하면 결국 나아질 거라고. 그래서 쉼 없이 악기를 붙잡았고, 밥 먹고 씻는 시간 외엔 모든 에너지를 연습에 쏟았다. 그런데 그런 날이 며칠 이어지면, 연습보다 멘탈이 먼저 무너진다.

그 시기에 교수님이 건넨 아주 짧은 말이 나를 멈춰 세웠다.
“산책 해봤어?”
“요즘 뭐 하고 쉬어?”
당연히 내 대답은 “아니요”, “없어요”였다. 그 질문을 받고 처음으로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걸 자각했다. 음악을 위해 유학을 왔지만, 음악만 하다가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조차 잊고 있었다는 걸.

그날 레슨은 연주보다 대화가 중심이었다. 교수님은 쉬지 않으면 더 무너진다고, 이 상태로는 결과가 좋아질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해줬다. 그날부터 나는 처음으로 ‘쉬는 법’을 고민하게 됐다.


산책, 대화, 쉼이라는 회복의 루틴

쉬는 법을 몰랐던 내가 처음 시도한 건 그냥 ‘걷는 것’이었다. 처음엔 머릿속이 복잡해서 걸으면서도 계속 연습 생각을 했지만, 반복하다 보니 그 시간 동안은 잠깐 마음이 멈춰 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런 날은 다시 연습실로 돌아갔을 때 손끝이 조금 더 가볍고, 마음이 덜 조급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 루틴이 조금씩 늘어났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알게 된 독일 친구들과 대화하거나, 수업이 없는 날엔 집 근처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식이었다.
한국 친구들과 연락을 하면서 위로를 받기도 했고, 아주 가끔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있는 날’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 시간들이 멘탈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내 감정을 ‘살아 있게’ 만들었다. 혼자만의 시간도 좋았지만, 결국 사람들과의 교류가 나를 회복시켰다. 교수님의 말처럼, 몸과 마음이 회복되지 않으면 결국 음악도 무너진다는 걸 실제로 느낀 시기였다.

연습 자체의 루틴은 별다르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에 시작해서 그날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힘들면 멈추고, 다음 날 다시 시작하는 식. 그렇게 유연하게 리듬을 만드는 게 오히려 더 오래 음악을 할 수 있게 해줬다.


멘탈을 버티는 힘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온다

유학 초기엔 ‘멘탈을 관리해야 한다’는 말조차 추상적으로 들렸다. 그런데 시간이 쌓이면서 알게 된 건, 멘탈이라는 건 결국 ‘어떻게 나를 이해하고 대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예전엔 실수가 나오면 스스로를 질책했고, 연습이 안 되면 자책부터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힘은, 특별한 조언이 아니라 스스로 겪은 날들에서 비롯됐다.

연습이 안 되는 날도, 수업에서 혼나는 날도, 무대 위에서 원하는 만큼 못한 날도 많았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며 점점 실망에 무뎌졌고, 웃으며 넘길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아마 독일어가 익숙해지고, 학교 생활이 편해지면서 삶 전반의 불안이 줄어든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변화 속에서 멘탈도 조금씩 단단해졌고,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게 됐다.

누군가는 “결국 멘탈이 실력을 만든다”고 말한다. 나도 지금은 그 말에 동의한다. 연습이 아무리 잘 돼도, 그걸 무대 위에서 해낼 수 있으려면 멘탈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 이곳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연습을 오래 하고 싶다면, 멘탈을 먼저 돌봐야 한다

독일 유학 중 가장 크게 배운 건, ‘실력’보다 ‘지속 가능성’이었다. 음악을 사랑한다는 마음 하나로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마음조차 소진되는 때가 온다. 그럴 때 필요한 건 더 많은 연습이 아니라, 나를 지탱해줄 회복의 기술이다.

슬럼프는 누구나 겪는다. 중요한 건 그때 멈추고, 숨 쉬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여유다. 그걸 알아가는 과정이 바로 멘탈 관리다. 그리고 그건 절대 연습실 안에서만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내가 다시 유학 초기로 돌아간다면, 그때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오늘 연습이 잘 안 돼도 괜찮아. 지금 너한테 필요한 건 좀 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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