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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가 부족할 때 생기는 현실적인 문제들 (행정, 수업, 그리고 아무 말도 못 했던 순간들)

by 열한시삼분 2026. 2. 8.

독일 유학 관련 이미지

 

독일 유학 초반, 나를 가장 자주 멈춰 세운 건 실기 시험도, 수업 난이도도 아니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을 제때 하지 못한다는 감각이었다. 독일어가 부족하다는 건 단순히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의 속도를 늦추고 스스로를 작게 만들었다. 이번 글은 독일어가 충분하지 않았던 시절, 실제로 겪었던 일들과 그 안에서 생긴 감정,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달라진 태도에 대한 이야기다. 잘 버티는 법을 알기 전까지의 아주 솔직한 기록에 가깝다.


독일어가 부족하다는 걸 가장 뼈아프게 느꼈던 순간들

독일어가 부족하다고 느낀 순간은 정말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지금도 가장 또렷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학교 행정 문제로 입학 여부까지 흔들렸던 경험이다. 독일에 온 지 1년이 조금 넘은 시기였고, 이제 막 독일어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애매한 단계였다. 기초적인 문법과 단어는 알고 있었지만, 행정에서 쓰는 독일어는 완전히 다른 언어처럼 느껴졌다.

학교 행정을 담당하던 독일 사람들과 계속 소통을 시도했지만,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돌아오는 대답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단어는 들리는데 문장이 이어지지 않았고, 중요한 설명일수록 더 빠르게 지나갔다. 내가 놓친 게 뭔지조차 알 수 없다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집에 돌아와 혼자 많이 울었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사실보다, ‘지금 내가 무슨 상황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게 더 무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화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이해가 안 되면 반드시 다시 물어봤고, “내가 이해한 게 이건데 맞냐”고 확인했다. 애매하면 일부러 아주 쉬운 단어들로 상황을 정리하려 했다. 이게 문제가 되는 건지, 다시 해야 할 게 있는 건지, 지금 당장 위험한 건 아닌지. 그렇게라도 스스로를 안심시키려 애썼다.

일상에서 겪은 사건 중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건 세탁기 설치 문제였다. 부품 문제로 설치가 어렵다는 설명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해, 기사 앞에서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다 결국 세탁기를 다시 돌려보냈다. 돈은 이미 지불한 상태였고, 설치는 안 됐고, 환불을 해야 하는지, 다른 모델을 골라야 하는지,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내 앞에서 욕을 하던 독일 사람에게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었던 나 자신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때 내가 화가 났던 건 그 사람의 태도보다도, 그 상황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나 자신이었다. 억울하다고 말할 언어도, 상황을 바로잡을 단어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 분했다. 그래서 일이 모두 끝난 뒤 혼자 다짐했다. “언젠가는 독일 사람이랑 독일어로 싸워서 이길 거다.” 그 말은 단순히 싸우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최소한 내 입장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고 싶다는 욕심에 가까웠다.


학교와 전공 안에서 겪은 언어의 벽

전공이 음악이니 언어 부담이 덜할 거라고 생각했던 건, 독일에 와서 가장 빨리 깨진 기대 중 하나였다. 레슨은 비교적 적응이 빨랐다. 사용하는 표현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고, 반복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론 수업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대학 수업을 외국어로 듣는다는 건, 단순히 단어를 알아듣는 문제를 넘어서 사고의 언어가 바뀌는 경험이었다.

수업 녹음은 거의 필수였다. 사실 녹음을 해도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마음이 덜 불안했다. 시험 범위 설명, 레포트 과제, 발표 준비, 음악 이론의 세부 개념까지. 이해해야 할 것들이 겹칠수록 머릿속이 점점 더 복잡해졌다.

교수님의 질문을 받을 때가 가장 긴장됐다. 이해한 척했다가 엉뚱한 대답을 할까 봐, 차라리 솔직하게 “다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하곤 했다. “내가 지금 이해한 게 맞다면”이라는 말을 습관처럼 붙였다. 그 말은 변명이 아니라, 내 나름의 안전장치였다.

이 과정을 겪으며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실감하게 됐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고 음악을 해석하는 방식 자체가 언어에 의해 달라진다는 걸 느꼈다. 동시에 한국어가 얼마나 풍부한 언어인지도 깨닫게 됐다. 한국어로는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미묘한 감정이나 뉘앙스가 독일어에서는 단어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한 가지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문장을 덧붙여야 했고, 그 과정에서 내가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이 흐려지는 느낌도 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언어가 사고를 만든다’는 말을 체감했다. 음악을 전공한다고 해서 언어가 덜 중요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중요했다.


일상에 쌓여가던 언어 스트레스와 자존감

독일어가 부족했던 시기, 전화 공포증이 생긴 적도 있다. 전화벨이 울리면 받지 않았고, 가능한 모든 일을 문자나 메일로 해결하려 했다. 독일 사람들과 직접 소통해야 하는 장소에 가야 할 때는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특히 유학 2~3년 차 즈음이 가장 힘들었다. 이제 조금 들리는 것 같았는데, 막상 말하려면 여전히 부족했고, 그 간극이 자존감을 조금씩 깎아먹었다. 내가 원래보다 말이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고, 머리가 둔해진 느낌도 들었다.

그러다 4년 차쯤, 레슨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독일어로만 소통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어느 순간부터 ‘아, 나 좀 늘었네’라는 감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학교 생활도 훨씬 편해졌고, 다른 유학생들을 도와줄 여유도 생겼다. 언어가 늘자 멘탈도 함께 단단해졌다.


독일어는 완벽함이 아니라 ‘버티는 힘’에 가까웠다

지금 돌아보면, 독일어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는 외국인이었고, 학생이었고, 어렸다. 완벽해지려다 입을 다물기보다는, 틀리더라도 계속 말하는 게 훨씬 중요했다. 그래야 상대의 태도도 달라졌고, 상황도 조금씩 움직였다.

물론 언어는 여전히 어렵다. 실수할 수 있고, 오해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불리한 상황을 겪을 수도 있다. 그래도 말해야 한다. 그게 독일에서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과거의 나에게 한마디를 한다면, 정말 고생 많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잘 버텼고, 충분히 잘했다. 후배 유학생들에게는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독일 사람과의 대화를 너무 겁내지 말고, 완벽해지려 애쓰기보다 계속 시도하면서 버텨보라고. 아무도 처음부터 잘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사실을, 생각보다 독일 사람들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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