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대학의 시험 시즌은 겉보기에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공기 자체가 달라져 있다. 특히 독일 음악대학에서는 긴장이 겉으로 드러나는 방식이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처음 시험 시즌을 경험했을 때, 나는 예상보다 훨씬 조용하고 절제된 분위기에 놀랐다. 분명히 시험은 코앞인데, 누가 크게 긴장하는 기색도, 경쟁적으로 움직이는 모습도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밀도 높은 집중과 묵직한 압박이 분명히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독일 음악대학에서 바이올린 전공자로 실제 시험 시즌을 보내며 느꼈던 분위기, 감정, 연습실의 변화, 그리고 시험 당일의 공기까지 솔직하게 기록해 보았다. 유학 이후의 수업과 시험 분위기를 상상하기 어렵다면, 현실적인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그 안은 더 팽팽하다
시험이 가까워지면 학교는 더 조용해진다. 복도는 정숙하고, 연습실 문은 닫힌 채 오래도록 불이 켜져 있다.
하지만 이 조용함은 ‘여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 연습에 더 깊이 잠겨 있기 때문에 생긴 긴장감이다.
한국의 시험 시즌이 바쁘고 빠듯하게 움직이는 분위기라면, 독일은 그 반대다. 누가 언제 시험을 보는지 굳이 공유하지 않고, 누가 얼마나 연습했는지도 잘 묻지 않는다. 각자 필요한 만큼 거리를 두고, 필요한 만큼 집중한다.
시험 기간의 진짜 무게는 '누가 얼마나 자기 리듬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있었다. 표면적인 분주함은 없지만, 그 안의 밀도는 확실히 평소보다 높다.
연습실의 공기, 연습 방식도 달라진다
시험 시즌의 연습실은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같은 공간인데도 묘하게 무겁고, 소리도 다르게 들린다.
처음엔 그 이유를 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확실히 느껴졌다. 연습실 안에서는 더 이상 새 곡을 탐색하지 않고, 익숙한 곡을 반복해서 정리하는 소리가 대부분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처럼 ‘벼락치기’나 밤샘 연습을 하는 모습이 드물다는 것이다.
오히려 평소 루틴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태도가 강하다. 시험을 위한 연습을 새로 짜는 게 아니라, 그동안의 방향을 정리하고 정돈하는 데 집중하는 편이다. 이건 시험이 단기간의 실력 검증이 아니라, 그동안 쌓아온 시간의 흐름을 확인하는 자리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분위기였다.
시험 당일, 조용한 집중이 지배한다
시험 당일, 대기실이나 복도에서 만나는 친구들조차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조용하다. 누구도 떠들지 않고, 긴장한 표정이지만 그 긴장이 겉으로 과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말 없이 악기를 점검하거나, 눈을 감고 조용히 템포를 상상하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서로를 자극하거나 비교하는 분위기는 없다.
시험을 마치고 나와서도 “어땠어?”, “잘 쳤어?” 같은 말보다 그냥 조용히 악기를 챙겨 돌아가는 모습이 많다.
시험이 평가의 끝이 아니라, 연주자의 흐름 중 한 지점이라는 시선.
이 문화는 시험을 받아들이는 태도부터 다르게 만든다. 시험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시험만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시선이 학교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결과보다 자기 리듬을 지켜내는 싸움
실기 시험이라는 건 단순히 잘 치는 사람을 가리는 자리가 아니었다. 교수들의 반응은 대부분 조용하고 무표정하다. 곡이 끝나도 반응 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 침묵 속에서 연주자는 끝까지 자신을 믿고, 자기 해석을 밀고 나갈 수 있어야 했다.
시험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게 맞는가’에 대한 확신을 스스로 줘야 했다는 점이다. 악기 상태, 반주 피아노, 오디션장 울림 등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기도 하고, 바로 앞에서 좋은 연주를 들은 뒤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하고 중심을 지키는 것이 실기 시험의 핵심이라는 걸 이번에 처음 체감했다.
시험은 결과보다 태도와 흐름을 확인하는 시간
독일 음악대학의 시험 시즌은 겉보기에는 굉장히 조용하고 차분하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묵직한 긴장감과 자기 집중, 그리고 깊은 연습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험이 무섭거나 힘들었다기보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뼈저리게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소란스럽지 않고, 보여주기식 경쟁도 없지만, 그만큼 자기 책임과 감정 조절이 중요해지는 시기.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면, 이 시험 시즌의 분위기를 단순히 ‘어렵다, 쉽다’로 판단하기보다는,
이 조용한 압박을 견디며 나를 지켜낼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이 현실적인 출발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