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에서 바이올린 유학을 준비할 때 가장 걱정됐던 건, ‘수업을 과연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연주야 익숙하다고 해도, 이론 수업은 독일어로 진행되고, 외국 학생들과 한 교실에서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지도 막막했다. 실제로 수업을 들어보니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어려웠고, 반대로 기대했던 것보다 편안한 부분도 있었다.
이 글은 독일 음악대학 바이올린 전공 수업을 직접 경험하면서 느꼈던 난이도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다. 실기 수업의 흐름, 이론 수업에서 마주한 언어 장벽, 과제와 연습 사이의 균형까지, 수업을 따라가는 게 어려운 이유가 뭔지, 또 그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적응하게 되는지를 나처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현실적인 시선으로 전하고 싶었다.
기술보다 사고를 요구하는 수업이 생각보다 버거웠다
독일 바이올린 전공 수업의 첫인상은 “의외로 당장 뭘 많이 시키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과제가 쏟아지지도 않고, 연습량을 직접 체크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방식이 결코 쉬운 구조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수업에서는 계속해서 질문을 받는다.
왜 이 템포를 선택했는지, 이 프레이즈의 중심을 어디로 보고 있는지, 이 곡을 어떤 성격의 음악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문제는 이 질문들에 정답이 없다는 점이다. 기술적으로 잘 연주해도, 사고가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수업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누가 대신 답을 정리해주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기준을 세워야 한다. 이 과정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단순히 손이 안 돌아가서 힘든 게 아니라, 머리가 계속 깨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체감 난이도가 높았다.
‘수업 시간’보다 ‘수업 이후’가 더 힘들다
독일 바이올린 전공 수업은 레슨 시간 자체만 보면 길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수업이 끝난 뒤다. 교수의 말은 대부분 짧고, 구체적인 해답은 제시되지 않는다. 대신 질문과 방향만 던져진다. 그래서 연습실에 돌아오면 막막해진다.
“그래서 오늘 레슨의 핵심이 뭐였지?”
“이 질문을 어떻게 연습으로 풀어야 하지?”
한국에서 익숙했던 레슨은, 연습실에 돌아오면 해야 할 일이 비교적 명확했다. 독일에서는 그 명확함이 없다. 연습을 설계하는 것 자체가 과제가 된다.
이 방식은 익숙해지기 전까지 꽤 부담스럽다. 연습을 많이 해도, 방향이 맞는지 확신하기 어렵고, 혼자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래서 실제로는 연습량보다 정신적인 소모가 더 크게 느껴지는 수업이었다.
비교가 줄어드는 대신, 책임은 훨씬 커진다
독일 음악대학에서는 다른 학생과의 직접적인 비교가 적다. 점수로 줄 세우지도 않고, 누가 더 잘하는지를 공개적으로 말하지도 않는다. 겉으로 보면 경쟁이 약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대신 모든 책임이 개인에게 돌아온다.
연습을 안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방향을 못 잡아도 대신 잡아주는 사람이 없다.
자유로워 보이는 환경이지만, 그만큼 스스로를 관리하지 못하면 쉽게 흔들릴 수 있다. 수업 난이도는 시험이나 평가에서 오는 압박이 아니라, 자기 통제와 자기 판단을 계속 요구받는 구조에서 나온다.
그래서 독일 바이올린 전공 수업은 “어렵다”기보다는, “피할 수 없이 나를 드러내는 수업”에 가깝다고 느꼈다. 준비가 부족하면 바로 티가 나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그 상태로 수업을 받아야 한다.
독일 전공 수업의 난이도는 ‘보이지 않는 쪽’에 있다
독일 바이올린 전공 수업은 과제량이나 시험 빈도로만 보면 어려워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체감 난이도는 전혀 다른 지점에 있다. 기술보다 사고를 요구하고, 결과보다 과정을 설명해야 하며, 연습을 스스로 설계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크다.
이 구조는 단기적으로는 버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연습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바꿔놓는다.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는 연습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연습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독일 바이올린 유학을 고민하고 있다면, “난이도가 높은가 낮은가”보다
이런 방식의 수업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보는 게 현실적인 출발점일 수 있다.
독일의 수업 난이도는, 손보다 머리와 태도를 더 많이 요구하는 쪽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