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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학의 현실, 그래도 독일에 남기로 했던 이유

by 열한시삼분 2026. 2. 19.

독일 유학 관련 이미지

 

유학 생활을 하다 보면 “돌아갈까”라는 생각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 그 말은 가볍게 던지는 투정이 아니라, 꽤 진지한 고민 끝에 나오는 질문에 가깝다. 나 역시 여러 번 흔들렸고, 밤마다 마음이 기울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돌아가지 않았다. 특별히 대단한 결단이 있었던 건 아니다. 책임감도 있었고, 자존심도 있었고, 계산적인 판단도 있었고, 무엇보다 이미 시작한 일을 내가 직접 마무리하고 싶었다는 마음이 있었다. 독일에 남는다는 건 단순히 자리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내 선택을 끝까지 가져가겠다는 태도에 가까웠다.


밤에는 흔들렸지만, 아침이 되면 다시 학교로 갔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감정은 대부분 늦은 밤이나 새벽에 찾아왔다. 집 안이 조용해지고, 하루 동안 애써 눌러두었던 감정들이 하나둘 올라올 때면 괜히 서러워졌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그냥 돌아가면 좀 편해질까’ 같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특히 경제적으로 불안했던 시기에는 그 감정이 더 짙었다. 혼자 집 안에 앉아 있으면 세상이 나만 빼고 잘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음 날 학교에 가면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수업은 기다려주지 않았고, 과제는 그대로 쌓여 있었고, 레슨 시간은 정확히 찾아왔다.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고, 악보를 펼치고, 연습실에서 같은 마디를 반복하다 보면 몇 시간 전의 감정이 희미해졌다. 어떤 거창한 결심이 생겼다기보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와 지금 해야 할 일들이 눈앞에 너무 분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돌아갈까’라고 생각하던 내가, 학교에서는 자연스럽게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익숙한 일상이 나를 붙잡았다. 돌아가고 싶다는 감정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 감정보다 현재 해야 할 일들이 더 구체적이었다. 결국 나는 매번 아침을 선택했고, 그렇게 하루씩 이어지다 보니 독일에 남아 있었다.


독일에 남기로 했던 건 감정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유학을 버티는 이유를 ‘꿈’이나 ‘열정’이라고 말하지만, 내 경우에는 오히려 계산에 가까웠다. 감정이 가장 크게 흔들릴 때조차 나는 머릿속으로 계속 비교하고 있었다. 지금 돌아가면 무엇을 잃게 될까, 남으면 무엇을 잃게 될까.

남아 있으면 잃는 것들도 분명했다. 안정감, 건강, 자존감, 그리고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 하지만 돌아가는 순간 잃게 될 것들은 더 근본적으로 느껴졌다. 지금까지 해온 시간의 의미, 부모님의 지원과 희생, 그리고 무엇보다 ‘끝까지 해봤다’는 경험. 그 모든 것이 중간에서 멈춰버릴 것 같았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돌아간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빠르게 변해 있는 한국 사회에 다시 적응해야 했고, 일자리도 처음부터 다시 구해야 했고, 인간관계도 다시 만들어야 했다. 음악을 계속할지 말지조차 새로 결정해야 했을 것이다. 독일에서 힘들게 쌓아온 시간들이 애매한 경력처럼 남는 게 더 두려웠다.

 

솔직히 말하면, 오기와 자존심도 작용했다. 여기서 포기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고, “힘들어서 그만뒀다”는 말로 나를 정리하고 싶지 않았다. 더럽고 치사해서라도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돌아가는 게 쪽팔리다고 느낀 순간도 있었다. 그 감정이 반드시 건강한 건 아니었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분명한 동력이었다.


독일에서 끝을 보지 않으면, 나는 나를 용납하지 못할 것 같았다

결국 내가 독일에 남은 가장 큰 이유는 하나로 정리된다. 시작한 일을 내가 정리하고 싶었다는 것. 누군가의 결정이나 상황 때문에 중단되는 게 아니라, 적어도 내가 충분히 해봤다고 느낄 때까지는 가보고 싶었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꽤 엄격한 편이다. 포기했다는 기억이 오래 남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기서 물러나면, 이후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스스로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도 도망쳤잖아’라는 목소리가 계속 따라다닐 것 같았다.

 

부모님에 대한 책임감도 무시할 수 없었다. 집안이 어려워졌던 시기에도 나를 먼저 생각해줬다는 걸 알고 난 이후로는 더더욱 쉽게 돌아설 수 없었다. 그 시간들을 헛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나를 무시했던 사람들 때문에라도 더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어딘가에는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결국 가장 중요한 건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나는 독일에 남았던 게 아니라, 내 선택을 끝까지 책임지기로 한 사람이었다.


나는 남겨진 게 아니라, 남기를 선택했다

지금 돌아보면 독일에 남기로 한 결정은 잘한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완벽한 선택이어서가 아니라, 그 시기의 나에게는 가장 솔직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나는 아마 똑같이 남았을 것이다. 밤에는 흔들리고, 새벽에는 울고, 그래도 아침이 되면 학교로 향했을 것이다.

유학 생활에서 남는다는 건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작은 선택들의 결과다. 오늘 하루 더 버티는 것, 이번 학기 한 번 더 등록하는 것, 다음 연주를 준비하는 것. 그렇게 하루씩 쌓이다 보니 시간이 흘렀고, 그 시간이 나를 바꾸었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독일에 남겨진 사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기로 스스로 결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떳떳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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