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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학 중 ‘돌아가고 싶다’고 느꼈던 순간들

by 열한시삼분 2026. 2. 18.

독일 유학 관련 이미지

 

유학 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냥 돌아갈까.” 그 말은 꼭 진짜 귀국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지쳐 있고, 상처받았고, 더는 버틸 힘이 없다고 느낄 때 나오는 말이라는 건 분명하다. 나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 음악이 아니라 현실이 나를 짓누르던 날, 자존심과 돈, 책임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얽혀 숨이 막히던 순간. 그때 나는 정말 돌아가고 싶었다.


 

자존심이 무너졌던 날, 연주보다 돈이 앞섰다

여러 번 흔들렸지만,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은 한 번의 클래스 연주(Vorspiel)다. 관객은 없었지만 같은 바이올린 클래스 학생들 앞에서 연주하고 평가를 받는 자리였기 때문에 오히려 더 긴장되는 날이었다. 나는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협주곡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곡을 꼭 한 번 제대로 연주해보고 싶었고, 나 스스로에게도 증명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아르바이트와 생활 문제로 연습 시간은 늘 부족했고, 진도는 더디게 나갔다. 악보는 쉽게 외워지지 않았고, 실력에 대한 의심은 점점 커졌다.

 

그날 연습을 봐주던 한국 선생님이 내 악기 소리를 지적했다. 소리가 아쉽다, 이 곡에는 맞지 않는다, 악기를 바꿀 생각은 없느냐는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연습실에 있던 다른 악기를 보여주며 계속 물었다. 살 생각이 없느냐, 대출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정말 방법이 없느냐고. 그 자리에 다른 한국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나는 “돈이 없어서요”, “안 될 것 같아요”, “제가 어떻게 사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음악을 설명하러 간 자리가 아니라, 돈이 없어 변명하는 자리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부끄러웠고, 치욕스러웠고, 화가 났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의지하던 사람이 내 상황을 알고도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이 아팠다. 그날 이후 연주에 대한 긴장감보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라는 회의가 더 크게 남았다.

그 순간, 나는 정말 돌아가고 싶었다.


“돌아가고 싶다”는 말의 진짜 뜻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말한 “돌아가고 싶다”는 진짜 귀국을 의미했던 걸까. 솔직히 말하면, 절반은 진심이었고 절반은 구조 신호였던 것 같다. 나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동시에 도망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부모님의 시간과 희생,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걸어둔 기대가 나를 붙잡고 있었다.

 

돌아가고 싶다는 말 속에는 이런 마음이 숨어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 나 대신 결정해주면 좋겠다는 마음.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말해주면 좋겠다는 바람. 혼자 모든 걸 감당하는 게 너무 버거워서, 잠깐이라도 기대고 싶었던 마음. 나는 이미 어른처럼 살고 있었지만 사실은 아직 많이 어렸다. 돈을 벌고, 학비를 계산하고, 연습 시간을 쪼개 쓰면서도 속으로는 누군가 나를 보호해주길 바랐다.

비행기표를 검색해본 적도 있고, 부모님과 그만두고 돌아갈지 이야기한 적도 있다. 하지만 결정을 하려 하면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집안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나를 먼저 생각해줬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고, 그걸 안 순간 쉽게 등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자존심도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돈 때문에 포기했다는 말로 나를 정의하고 싶지 않았다.


끝을 봐야 했던 이유

결국 나는 돌아가지 않았다. 이유를 길게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정확한 표현은 이것이다. 끝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멈추면 평생 ‘그때 도망쳤다’는 기억이 따라다닐 것 같았다. 힘들었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스스로를 용납하지 못할 것 같았다.

유학 생활에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은 생각보다 자주 등장한다. 돈 때문에, 사람 때문에, 언어 때문에, 혹은 이유 없이 지쳐서. 그 감정은 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한계까지 갔다는 신호에 가깝다. 나 역시 그 선을 몇 번이나 넘었다. 그렇지만 결국 남아 있었다. 대단해서가 아니라, 물러나면 더 괴로울 것 같아서.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많이 흔들렸고, 많이 부족했고, 많이 울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은 나를 부정하는 기억이 아니라, 내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알게 해준 시간이었다. 그날 연습실에서 느꼈던 치욕과 분노도, 무너진 자존심도, 결국은 나를 끝까지 붙들고 가는 힘이 되었다.


돌아가고 싶었던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 시절의 “돌아가고 싶다”는 말은 비겁함이 아니었다. 그건 포기의 선언이라기보다, 한계에 다다른 사람이 겨우 꺼낸 구조 신호에 가까웠다. 너무 힘들어서, 너무 서러워서, 더는 혼자 감당하기 버거워서 나온 솔직한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말을 했던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때의 나는 많이 흔들렸다. 자존심이 상했고, 자신감은 바닥까지 내려갔다. 음악을 하러 간 나라에서 돈 때문에 고개를 숙여야 했고, 실력보다 환경에 휘둘리는 기분을 자주 느꼈다.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실망했던 날들이 많았다. ‘왜 나는 이렇게 약할까’, ‘왜 이렇게 쉽게 무너질까’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 무너지지 않은 게 아니라, 무너지면서도 계속 걸어갔던 거였다. 완벽하게 버틴 게 아니라, 울면서도 다음 날 연습실로 향했던 거였다.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악기를 들고 무대에 섰던 선택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유학 생활에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생각보다 흔하다. 돈, 사람, 언어, 외로움, 자존심.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그 말 속에는 공통점이 있다. 지금의 나로는 이 상황을 감당하기 버겁다는 고백이다. 그리고 그 고백을 인정하는 순간, 오히려 조금은 단단해진다. 나 역시 그 감정을 외면하지 않았기 때문에 끝까지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그날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네가 느끼는 감정은 당연하다. 약해서 그런 게 아니다. 다만, 이 시간이 지나면 너는 예전으로 돌아가지는 못하겠지만, 대신 훨씬 깊어진 사람이 되어 있을 거다.”

 

나는 결국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힘들었지만, 도망치지 않았던 기억이 나를 지탱해준다. 돌아가고 싶었던 순간들까지 포함해서, 그 시간은 모두 나의 일부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그때의 나는 무너지려 했던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가려고 애쓰던 사람이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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